신차 수출의 위기가 만든 기적, K-중고차의 역할 재정의
신차 수출 감소에도 K-중고차 수출이 급증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했다. 관세 전쟁 속 중고차의 역할 재정의와 성공 요인,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분석했다.
5년 만의 신차 수출 감소, 중고차가 버티고 있다
올해 한국 자동차 산업은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신차 수출은 5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하며 271만~272만 대 수준으로 줄어든 반면, 중고차 수출은 84억 달러를 달성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신차를 제외한 중고차만 놓고 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수출액은 전체 자동차 수출의 12.7%를 차지했다. 이는 상반기 7.1%에서 5개월 만에 거의 두 배 가까이 확대된 수치다. 만약 중고차 수출이 없었다면 한국의 자동차 수출 총액은 순감소했을 것이 분명했다.
더 구체적인 분석에 따르면, 신차 수출액만 계산했을 때 601억 달러에서 576억 달러로 4.2% 감소했다. 그러나 중고차 수출 84억 달러가 더해지면서 전체 수출액은 660억 달러를 기록, 2.0% 성장을 달성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뒷방 효자'였던 중고차가 이제는 당당히 주인공으로 부상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관세 전쟁의 나비효과, 신차와 중고차를 가르다
신차 수출이 급브레이크를 밟은 원인은 명확하다. 미국 정부가 올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한 고율 관세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전략을 취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대미 수출 위축으로 이어졌다.
한국은행의 분석은 미국의 관세 정책이 지속될 경우, 자동차 수출이 GDP 재화 수출 기준으로 0.6%, 대미 수출 물량 기준으로 4%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반도체 등 다른 산업에 비해 자동차 산업이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신차의 부진과 정반대로 중고차는 청출어람의 면모를 보여줬다. 작년 같은 기간 46억 달러에서 올해 84억 달러로 무려 82.6% 증가한 것이다. 신차라는 전통적인 수출 상품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고차가 그 역할을 대체하며 산업 전체의 낙수효과를 방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중고차의 성공 방정식: 브랜드, 환율, 그리고 인프라
K-중고차 수출의 가파른 상승세는 정확히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만족된 결과였다.
첫째, 한국 자동차의 브랜드 가치 상승이다. 2024년 기준 한국 중고차는 2021년 46만 대 대비 40% 가까이 증가한 63만 대가 수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량 1대당 평균 판매 단가도 대폭 상승했다. 이는 해외 바이어들이 현대·기아 차량에 대한 신뢰를 더욱 깊게 쌓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둘째, 원화 약세라는 '운의 몫'이 작용했다. 올해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달러 기준 가격이 자연스럽게 하락했고, 이는 신흥국 소비자들에게 더욱 가성비 있는 상품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셋째, 국내 중고차 시장의 인프라 고도화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고차 판매 대수는 약 243만 대로, 신차 판매 대수 164만 대를 크게 넘어섰다. 경매 인프라 확충과 AI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의 도입은 수출 물량 확대를 가능하게 했으며, 대기업 기반 인증 중고차 사업과 플랫폼의 차량 이력 정보 투명성 확보는 소비자 신뢰도를 높였다.
또한 인천항 인근 남동·부평·주안공단에 입주한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탄탄한 부품 공급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도 K-중고차의 경쟁력을 더했다.
왜 이 나라들이 한국 중고차를 사는가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통계를 살펴보면, 한국 중고차의 주요 수입국들은 뚜렷한 특징을 보였다.
수출액 기준으로는 키르기스스탄(26억 2,360만 달러), 러시아(9억 980만 달러), 카자흐스탄(6억 6,460만 달러), 아랍에미리트(3억 3,720만 달러), 튀르키예(2억 6,400만 달러) 순이었다. 수출 대수 기준으로는 리비아(119,519대), 키르기스스탄(104,738대), 튀르키예(93,615대), 아랍에미리트(45,719대), 러시아(43,066대) 순으로 집계됐다.
흥미로운 점은 수출액과 수출 대수의 순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별 중고차의 평균 가격대가 상이하다는 의미이며, 사실 더 주목할 만한 패턴이 있었다.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는 단순한 최종 소비처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역내의 '교역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 국가를 통해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내륙 국가의 차량 수요가 충족되는 구조였다.
한편 리비아,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 등의 공통점은 신차를 구입할 경제적 여력이 한정적이지만 자동차 수요는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들 지역 소비자들에게 한국 중고차는 '합리적이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선택지'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중고차 산업의 숨겨진 위험신호
그러나 현재의 호황 속에는 여러 우려 신호도 잠재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시장 지역의 과도한 집중도 문제다. 한국 중고차 수출이 중앙아시아, 러시아, 북아프리카 등 특정 지역에 너무 많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매우 취약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국제 제재 상황이 악화되거나 특정 지역의 수입 규제가 강화되면 수출액이 급락할 수 있다.
둘째, 품질 인증의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업체 대다수가 정보력의 한계가 명확한 영세 사업자로, 정보 비대칭 문제가 심각했다. 일본과 중국 같은 경쟁국은 이미 공신력 있는 품질 인증 제도를 갖추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미진한 상태였다.
셋째, 글로벌 수입 규제 강화에 대한 대응 체계가 미흡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향후 국제사회가 중고차 수입 기준을 더욱 강화할 경우, 현재의 영세 사업자 중심 구조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경쟁력 강화의 시급함: 품질 인증에서 시장 다변화까지
이 같은 위험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구조적 개혁이 필수적이다.
먼저 공신력 있는 품질 인증 제도의 도입이 가장 시급하다. '수출자동차품질평가사' 제도가 본격 추진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제도는 차량 상태 진단, ESG 기준 평가, 국가별 수출 규정 검수 등을 수행하며, AI 기반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 품질 인증서를 발급한다. 그러나 이것이 국제표준(ISO 17024)에 부합하며 글로벌 신뢰도를 확보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둘째, 신흥시장 개척을 통한 지역별 다변화가 요구된다. 현재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신차를 구입할 경제적 여력이 없으면서도 차량 수요가 많은 신흥국은 아직 한국 중고차가 뚫지 못한 '블루오션'으로 남아있다.
셋째, 해외 애프터마켓 서비스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 중고차 구매자가 해외에서 필요로 하는 부품을 적기에 공급하는 시스템이 확충되면, 판매 후 만족도가 높아져 브랜드 신뢰도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신차 부진 시대의 새로운 전략
올해 한국 자동차 수출 통계는 정책 입안자와 산업계에 명확한 신호를 보냈다. 미국의 고관세 시대가 도래했을 때, 신차라는 단일 상품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메시지였다.
중고차 산업은 단순히 기존 차량을 재판매하는 것을 넘어,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 자동차 경매장, 물류 인프라 등 관련 생태계 전체를 활성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신차 수출이 위축된 상황에서 실직 위험에 처한 노동자들을 흡수하는 고용 안전판이 될 수도 있었다.
따라서 K-중고차는 더 이상 신차의 보조 역할이 아니라, 글로벌 경기 침체와 보호무역주의의 물결을 견디기 위한 '전략적 산업'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품질 인증 강화, 시장 다변화, 정보 시스템 고도화 등의 과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한다면, 중고차는 단기적인 부족분 메우기를 넘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성장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