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中 전기차 시장 정조준…모멘타 자율주행 기술 탑재로 지능형 전략 선회

현대자동차가 중국 시장 공략의 판을 완전히 새로 짰다. 베이징자동차(BAIC)그룹과의 합작사인 베이징현대는 중국 자율주행 스타트업의 선두주자 '모멘타(Momenta)'와 전격 손잡고 지능형 주행 기술 개발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협력은 단순한 기술 제휴를 넘어 베이징현대가 올해 첫 양산형 레벨2 자율주행차를 출시하고, 2027년에는 레벨2+급 자율주행차 상용화까지 추진한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담고 있다.

현대차, 中 전기차 시장 정조준…모멘타 자율주행 기술 탑재로 지능형 전략 선회
현대차, 中 전기차 시장 정조준…모멘타 자율주행 기술 탑재로 지능형 전략 선회

중국 자율주행 강자 '모멘타'와의 운명적 만남

이 전략적 결정은 현대차그룹이 중국 시장에서 겪어온 고난의 역사를 고려하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2016년 114만 대를 넘던 중국 내 판매량은 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 여파로 2017년 78만 대로 급감했고, 2024년에는 20만 대까지 추락했다. 이런 참담한 성적표 앞에서 현대차가 선택한 돌파구는 바로 '중국식 지능화'였다. 중국 소비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지능형 주행 기술을 현지 최고 스타트업과 협력해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모멘타는 2016년 설립된 중국 자율주행 업계의 떠오르는 별이다. 토요타, 메르세데스-벤츠, 보쉬, 텐센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투자한 이 회사는 2021년에만 5억 달러(약 6,718억 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하며 중국 내 자율주행 부문 최대 투자 기록을 세웠다. 현재 40만 대 이상의 차량에 운전자 보조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으며, 중국 내에서 레벨4 자율주행 로보택시까지 운영 중이다.

레벨2+의 진짜 의미…AI가 운전을 배운다

베이징현대가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레벨2+ 자율주행은 단순한 숫자 증가가 아니다. 이는 조건부 자율주행인 레벨3 바로 직전 단계로, 기존 레벨2보다 훨씬 정교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을 제공한다. 운전자가 여전히 차량 주행에 개입하지만, 인공지능(AI) 기술과 발전된 카메라·센서를 활용해 조향과 가속·감속을 한층 더 정밀하게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모멘타의 기술력은 특히 '비용 효율성'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고가의 라이다(LiDAR) 센서에 의존하는 대신, 카메라 기반의 비전 시스템과 딥러닝을 활용해 저비용으로 고정밀 자율주행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테슬라의 접근법과 유사하다. 하지만 모멘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의 복잡한 도로 환경과 교통 특성에 특화된 솔루션을 제공한다. 베이징의 혼잡한 도심 교차로, 예측 불가능한 전동 스쿠터 운전자들, 빠르게 변화하는 교통 신호 체계까지 모두 학습한 AI가 탑재된다는 얘기다.​

모멘타의 '플라이휠(Flywheel)' 기술은 실시간 데이터 수집과 클라우드 기반 학습을 결합한다. 도로를 달리는 수십만 대의 차량이 수집한 데이터가 클라우드로 전송되고, 이를 통해 AI 모델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다. 메르세데스-벤츠가 2025년 출시 예정인 전기 CLA 세단에 모멘타의 HD맵 없는 도심 자율주행 보조 기능(NOAH)을 채택한 것도 바로 이 기술력 때문이다. HD맵 없이도 도심에서 자율주행 보조가 가능하다는 건 센서와 AI만으로 실시간 환경 인식이 완벽하다는 뜻이다.​

1조 7천억 원 쏟아붓고, 신차 4종 쏟아낸다

현대차그룹과 BAIC가 베이징현대 혁신을 위해 투입한 금액은 무려 80억 위안, 한화로 약 1조 7,018억 원이다. 이는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현대차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베이징현대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올해만 신차 4종을 출시할 계획이며, 이중 2종은 새로운 전기차(EV) 모델이다. 지난해 10월 출시한 '일렉시오(EO)'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중국 내 전기차 라인업을 6종으로 확대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현대차의 중국 전략은 단순히 차를 많이 파는 게 목표가 아니다. 중국을 '전기차 생산과 글로벌 공급망을 보완하는 전략적 플랫폼'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1월 초 베이징을 방문해 CATL, 시노펙, 위에다그룹 최고경영자들과 수소·배터리 산업 관련 의견을 교환하며 중국 현지 기업과의 전략적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는 중국 시장을 단순 판매처가 아닌 기술 혁신과 부품 조달의 핵심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베이징현대는 옌타이와 상하이에 약 1,300명의 중국 엔지니어로 구성된 R&D 조직도 구축했다. 이 조직은 신에너지, 스마트 드라이빙, 스마트 콕핏이라는 세 가지 핵심 기술 분야에 집중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겸 COO의 발언이다. 그는 "베이징현대에 대한 기술 및 인재 지원을 강화하고, 전동화·지능형 분야의 핵심 기술 자원을 중국에 더 많이 투입하며, 전문 기술 인력을 직접 파견해 연구개발과 구현 과정에 참여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 한국에서 개발한 차를 중국에 그대로 들여오던 방식과 완전히 결별한 것이다.​

모멘타 지분 인수설, 현실이 되나

업계의 시선은 이번 협업이 모멘타 지분 확보로 이어질지에 쏠려 있다. 무뇨스 사장은 이미 지난해 9월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중국의 선도적 자율주행 기업인 모멘타 지분 일부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기술 협력에서 시작해 투자로 이어지는 건 현대차가 자율주행 분야에서 보여온 전형적인 패턴이다. 현대차는 이미 미국의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에 5조 원 이상을 투자하며 레벨4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모멘타 인수는 현대차에게 전략적으로 여러 이점을 안겨준다. 첫째, 중국 시장에 특화된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자율주행 기능 표준을 마련하고, 차-도로-클라우드 일체화 정책을 통해 레벨3 이상 자율주행 차량 상용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만 자율주행 시스템이 탑재된 차량 판매량이 700만 대에 달하며 시장 침투율이 34.9%에 이르렀다. 이런 거대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현지 선두 기업의 기술을 확보하는 건 필수다.​

둘째, 모멘타는 중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진출도 적극 추진 중이다. 모멘타는 차량호출 플랫폼 우버(Uber)와 협력해 2026년 초 유럽에서 레벨4 자율주행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초기에는 독일 뮌헨에서 안전 요원이 탑승한 형태로 시범 운행하며, 이후 유럽 주요 도시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모멘타 지분 확보를 통해 중국은 물론 유럽 로보택시 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 특화된 지능형 주행 기술을 전면에 내세워 베이징현대의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라며 "모멘타와의 협력에 이어 지분 참여 역시 장기 전략 차원에서 실현 가능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모멘타는 이미 토요타, 메르세데스-벤츠, 보쉬 같은 글로벌 자동차 및 부품 기업들의 투자를 받았고, 현재 130종 이상의 차량 모델에 자사 기술을 탑재하기 위해 6개 브랜드와 협력 중이다. 현대차가 이 대열에 합류하면 모멘타의 기업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냉혹한 현실

현대차의 이번 결단은 중국 전기차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반영한다. 중국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히 전기 모터로 달리는 차가 아니라, 스마트폰처럼 지능적으로 작동하는 '바퀴 달린 컴퓨터'를 원한다. 한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이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경험에서 앞서가고 있다"며 "외국 브랜드들이 따라잡기 위해서는 현지화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BYD는 지능형 주행 기술 개발에만 1,000억 위안(약 19조 3,000억 원)을 투자하고 5,000명 이상의 전담 팀을 구성했다. 화웨이는 자체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하며 통신 기업에서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도 무시할 수 없다. 시진핑 국가주석 주도로 2015년 발표한 '중국 제조 2025' 정책 이후 4년간 중국 정부가 지원한 국부펀드 규모만 2,000억 달러(약 270조 원)가 넘는다. 2017년부터는 인프라 융합에 초점을 맞춰 차량간(V2V), 차량-도로간(V2I) 통신이 가능한 5G 자율주행 스마트 고속도로를 1만 5,000km 이상 깔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창안자동차와 베이징자동차 산하 아크폭스의 차량에 레벨3 자율주행 제품 진입을 공식 허가하며 본격적인 상용화 시대를 열었다.

2026년 중국 승용차 시장 전체 규모는 2,400만 대로 전년 대비 1%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속에서 전기차와 지능형 차량의 비중은 급격히 늘고 있다. 300만 대 이상 판매 목표를 제시한 자동차 기업만 7개에 달할 정도로 경쟁은 치열하다. 현대차가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중국식 혁신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모멘타와의 협력은 바로 그 시작점이다.​

글로벌 자율주행 전략, 삼각편대로 간다

현대차의 자율주행 전략은 이제 미국-중국-한국의 삼각편대로 짜여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모셔널을 통해 레벨4 자율주행 상용화를 추진하고, 중국에서는 모멘타와 협력해 레벨2+ 지능형 주행을 확보하며, 한국에서는 포티투닷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자회사 아트리아AI를 통해 독자 기술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박민우 신임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은 지난 1월 19일 현대차 수뇌부 및 자율주행 기술 리더들과 첫 상견례를 갖고 자율주행과 피지컬 AI 상용화 속도전에 나서겠다고 직접 밝혔다.

모셔널은 지난해 AI를 접목한 '대규모 주행 모델(LDM)'을 새로운 기술 돌파구로 제시했다. 카메라, 라이다, 레이다 등 30개 이상의 이종 센서를 활용한 멀티모달 센서 전략과 함께, 테슬라식 엔드투엔드(End-to-End) 학습 방식도 도입하기로 했다. 기존 규칙 기반 자율주행에 학습 기반 AI를 결합해 더 안전하면서도 편안한 레벨4 자율주행을 구현한다는 목표다. 올해 연말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에서 구글 웨이모와 바이두 아폴로가 이미 상업화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현대차의 부담은 크다.​

현대차가 모셔널에 5조 원 이상을 쏟아부은 것과 달리, 모멘타 협력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이다. 이미 상용화된 기술을 빠르게 도입해 중국 시장에서 즉각적인 성과를 내고, 필요하면 지분 투자로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현대차가 미국에서는 레벨4 완전 자율주행을, 중국에서는 레벨2+ 지능형 주행을 동시에 추진하는 건 각 시장의 특성과 규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중국은 정부 주도로 인프라와 규제가 빠르게 정비되고 있어 레벨3 이상도 곧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시장 출시는 '글쎄'

베이징현대가 모멘타 기술을 탑재해 출시할 레벨2 및 레벨2+ 자율주행 차량이 한국 시장에 들어올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 현대차는 국내 시장에서 자체 개발한 '현대 스마트센스(Hyundai SmartSense)'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으며, 아트리아AI를 통해 독자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도로 환경과 교통 패턴에 특화된 모멘타의 소프트웨어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현지화 작업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현대차는 자율주행 기술의 글로벌 표준화보다는 각 시장별 최적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다만 모멘타의 핵심 기술인 비전 기반 자율주행 알고리즘, 클라우드 기반 실시간 학습 시스템, HD맵 없는 도심 주행 기능 등은 향후 현대차의 글로벌 자율주행 플랫폼에 통합될 가능성이 있다. 유지한 현대차·기아 자율주행개발센터장은 "서로 장점을 살려 데이터 공유, 모델 통합 등도 검토하고 있다"며 모셔널과 아트리아AI의 기술 통합 로드맵을 언급한 바 있다. 모멘타 기술도 이런 통합 과정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한국 소비자들이 모멘타 기술을 체험하려면 베이징현대 차량을 직접 구매하기보다는, 현대차가 모멘타의 핵심 알고리즘을 자사 글로벌 플랫폼에 녹여낸 차세대 모델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30년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가 2조 3,000억 달러(약 3,10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현대차가 중국에서 확보한 기술과 경험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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