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자율주행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실리를 택한 벤츠의 급회전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야심 차게 내놓았던 레벨 3 자율주행 옵션을 최근 신차 라인업에서 삭제하거나 중단했다. 현대차 역시 제네시스 G90 등에 적용하려던 상용화 일정을 잠정 중단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글로벌 제조사들이 더 높은 단계를 향한 경쟁에서 돌연 뒷걸음질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단순한 기술적 퇴보가 아니다. 규제 리스크를 회피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영리한 전략적 선택인 레벨 2 플러스로의 대전환이다. 실리를 택한 거인들의 급회전 배경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완벽한 자율주행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실리를 택한 벤츠의 급회전
완벽한 자율주행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실리를 택한 벤츠의 급회전

레시피에서 직관으로 변화한 기술 패러다임

자율주행 기술의 초기 발전은 사전에 입력된 규칙에 따라 차량이 움직이는 룰베이스 방식이 주도했다. 이는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를 일일이 코드로 짜 넣는 정교한 레시피와 같았다. 하지만 도로 위 예측 불허의 변수는 무한대에 가까웠고, 모든 예외 상황을 규칙화하는 것은 공학적 한계에 부딪혔다. 이에 따라 현재 시장은 데이터가 AI를 직접 가르치는 엔드투엔드(E2E) 딥러닝과 드라이빙 파운데이션 모델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 필수재로 여겨졌던 고가의 라이다(LiDAR) 센서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단순히 센서 단가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클로즈 루프 구축을 통한 소프트웨어 확장성이 핵심 경쟁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BYD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A2MAC1의 분석에 따르면 라이다를 탑재한 BYD의 신의 눈 시스템 하드웨어 비용은 약 2,105달러로, 라이다가 없는 테슬라 FSD 하드웨어 비용(2,360달러)보다 오히려 11% 저렴하다. 이는 중국의 강력한 공급망을 활용한 규모의 경제가 하드웨어 물량 공세를 가능케 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자율주행은 센서 숫자의 싸움이 아닌, 공급망 전략과 데이터 학습 효율의 싸움으로 변모했다.

  • 테슬라 FSD: 라이다를 배제하고 오직 카메라와 방대한 실제 주행 영상 데이터를 활용한 AI 학습 방식을 통해 도심과 고속도로를 아우르는 범용적 주행 능력을 확보했다.
  • 혼다 레전드: 2021년 세계 최초 레벨 3 양산차를 표방하며 5개의 라이다를 탑재했으나, 센서 가격 폭등과 대중화 실패로 100대 한정 리스 판매에 그쳤다.

기술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제조사들은 기술적 완성도 너머에 있는 거대한 법적 책임의 장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제조사를 위협하는 거대한 법적 책임의 무게

자율주행 레벨 3로의 진입은 사고의 책임 주체가 운전자에서 제조사로 이동하는 종단적 책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레벨 2까지는 시스템이 운전을 보조하되 책임은 인간에게 있지만, 제조사가 눈을 떼도 된다고 허용한 레벨 3부터는 시스템 가동 중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해 기업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기업 경영에 있어 통제 불가능한 리스크를 떠안는 것과 같다.

실제로 자율주행 리스크가 기업의 존립을 흔든 사례는 명확하다. 2023년 GM의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행자 사고를 일으키자 주정부는 운행 허가를 즉시 취소했다. 이 사건으로 GM의 주가는 폭락했고 CEO 사임과 대규모 해고가 뒤따랐다. 더욱이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의 평가 결과는 충격적이다. 테슬라 모델 3와 현대차 제네시스 G90의 주행 보조 시스템은 나쁨(Poor) 등급을 받은 반면, 토요타 렉서스 등은 양호(Acceptable) 등급을 받으며 레벨 2 플러스 단계에서도 제조사별 안전 격차가 큼을 증명했다.

제조사 입장에서 레벨 3는 99.9%의 완벽함으로도 부족한 0.1%의 불확실성이 파산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다. 따라서 제조사들은 레벨 2 플러스라는 명칭 아래 운전자 책임이라는 안전장치를 유지하면서, 고성능 AI 기능을 구독 모델 등으로 수익화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리스크에 대한 방어 기제는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가성비와 실용성 문제로 직결된다.

천만 원짜리 옵션이 주는 초라한 자유와 낮은 가성비

현재 레벨 3 기술이 소비자에게 요구하는 비용은 제공하는 실제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불균형하다. 레벨 3 구현을 위한 고정밀 라이다와 HD 지도, 복잡한 인증 절차는 차량 가격을 폭등시키지만, 사용 조건은 극히 초라하다. 시속 60km 이하의 저속 주행, 맑은 날씨, 물리적으로 분리된 고속도로 정체 구간이라는 극도로 제한적인 작동 설계 영역(ODD)이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시스템이 깨어난다.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도 정체된 도로에서만 잠깐 눈을 떼기 위해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추가로 지불하는 것에 소비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BMW 역시 고객 혜택이 제한적이고 수요가 저조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주요 제조사들이 책정한 옵션 가격과 사용 한계는 시장 경쟁력의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 메르세데스-벤츠 드라이브 파일럿: 약 900만 원(5,950유로), 미국 일부 주와 독일 고속도로에서 시속 95km 이하 조건부 작동.
  • BMW 퍼스널 파일럿: 약 1,000만 원(6,000유로), 독일 내 고속도로 정체 구간 시속 60km 이하에서만 가능.
  • 현대차/기아 HDP: 742만 원, 고속도로 및 자동차 전용도로 작동을 목표로 했으나 실제 도로 환경의 변수 대응을 위해 상용화 잠정 중단.

이처럼 낮은 가성비 외에도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는 찰나에 발생하는 제어권 전환의 문제는 인간의 반응 속도와 구조적 위험성이라는 본질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시험하는 제어권 전환의 함정

레벨 3 자율주행의 가장 위험한 지점은 시스템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운전자에게 운전대를 넘기는 제어권 전환 요청(TOR)이다. 이는 인간이 운전 루프 밖으로 완전히 나갔다가 급격히 복귀해야 하는 루프 아웃(Loop-out) 문제를 야기한다. 넷플릭스를 보던 운전자가 경고음 직후 0.5초 만에 시속 100km의 차량 통제권을 완벽히 회복하는 것은 인지 공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프랑스 마르세유 대학 연구팀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자율주행 시간이 길어지고 운전자가 다른 과업에 몰입할수록 운전 복귀 반응 속도는 현저히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스템 고장과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운전자는 상황을 파악하느라 개입 여부를 더욱 지연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차조차 포기한 최악의 순간을 주의가 분산된 인간에게 떠넘기는 구조는 기술적으로 상위 단계일지 모르나, 안전 측면에서는 오히려 치명적인 함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모순 때문에 제조사들은 책임은 덜면서 성능은 극대화한 레벨 2 플러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

책임은 덜고 성능은 극대화한 레벨 2 플러스의 시대

최근 글로벌 제조사들은 레벨 3라는 명칭이 주는 법적 부담을 내려놓고, 레벨 2 플러스 또는 DCAS(Driver Control Assistance Systems)라는 실용 노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2024년 9월 발효된 UN R.171 규제는 DCAS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며 제조사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이는 운전자가 최종 책임을 지는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AI 기반의 강력한 소프트웨어로 레벨 3에 준하는 편의성을 제공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제조사의 법적 리스크를 제거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여 향후 10년의 자율주행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제조사들은 독자 개발의 한계를 인정하고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을 통해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 BMW: 퀄컴과 협력한 스냅드래곤 라이드 파일럿을 통해 고속도로에서 시속 130km까지 핸즈프리 주행이 가능한 모터웨이 어시스턴트를 선보였다.
  • 메르세데스-벤츠: 엔비디아와 손잡고 도심과 고속도로 전체를 아우르는 풀스택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MB 드라이브 어시스트 프로를 CIA 전기차부터 적용한다.

결국 화려한 레벨 3의 환상보다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넓은 범위를 안전하게 보조하는 레벨 2 플러스가 자율주행 대중화를 이끌 실질적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제조사들은 이제 책임의 회피가 아닌, 성능의 극대화를 통해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두 번째 전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