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도, 회사 차도 이젠 문제없다"...장애인 주차표지, 25년 만의 대전환
장애인 주차표지 제도가 25년 만에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대전환됐다. 택시, 회사 차량 이용 시에도 주차구역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불법 주차 과태료도 대폭 인상됐다. 디지털 기술 도입과 주차공간 확대도 함께 추진하여 장애인의 이동 편의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25년간 유지돼온 장애인 주차 제도가 근본부터 바뀐다. 보건복지부가 23일 발표한 제6차 편의증진 국가종합 5개년 계획(2025~2029)의 핵심은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주차표지를 차량이 아닌 개인에게 발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불법 주차 과태료도 대폭 인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차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다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차량 중심'이라는 점이다. 장애인 본인이나 가족 명의로 등록된 차량 1대에만 표지를 발급하기 때문에, 보행상 장애인이 택시나 카셰어링, 회사 차량을 이용할 때는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을 쓸 수 없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자동차가 아닌 장애인 개인에게 주차가능 표지가 발급되어야 실질적인 제도 혜택이 이루어진다"고 요청해왔다. 이번 정책은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다.
국민권익위 박종민 부위원장은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주차표지의 발급 기준이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됨에 따라 보행상 장애인의 이동 편의성이 크게 향상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권, 일상의 권리가 되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출퇴근과 외근, 업무 미팅, 병원 방문, 여가 활동 등 일상 전반에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야 비로소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차량 중심의 주차표지 제도는 보행상 장애인이 회사 업무용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직종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택시를 타도, 렌터카를 빌려도 주차 문제는 늘 발목을 잡았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을 포함한 37개 장애인단체는 2022년부터 개인 중심의 표지 발급을 요구해왔다. 장애인 이동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것은 물리적 주차공간 부족과 함께 '제도의 경직성'이었다.
해외는 이미 사람 중심
미국, 호주, 일본, 유럽연합(EU)은 이미 개인 중심의 장애인 주차 허가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EU는 회원국 간 장애인 주차 허가증을 상호 인정하며, 한국을 포함한 ECMT(유럽 교통부 장관 회의) 준회원국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일본 사가현의 '퍼킹 퍼밋(Parking Permit)' 제도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장애인 개인에게 휴대용 허가증을 발급해 어떤 차량을 타든 주차구역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장애인의 실질적 이동 편의성이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만 원으론 못 막는다
제도 전환의 또 다른 축은 과태료 강화다. 현재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불법 주차 시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억제력은 거의 없다. 지난해에만 44만 6천933건이 적발되어 499억 3천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지만 상습 위반자는 줄지 않았다.
경기도의 한 상습 위반자는 5년간 234회 적발되어 2천683만 원의 과태료를 냈다. 10만 원이라는 과태료가 '주차비'로 여겨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이를 해외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시는 조례에 따라 장애인 주차증 불법 사용 시 1100달러(약 140만 원)의 추가 벌금을 부과하며, 캘리포니아주 교통부는 별도로 250~1000달러의 범칙금을 부과한다. 합산하면 최대 2100달러 이상의 벌금이 가능하다.
독일도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불법 주차에 가장 높은 액수의 경고금과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태료 인상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디지털 기술로 오남용 막는다
개인 중심 발급으로 전환하면서 우려되는 것은 표지의 오남용이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디지털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권익위는 고속도로 하이패스처럼 위치정보를 활용해 장애인 탑승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 기반 디지털 주차표지 솔루션도 개발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장애인 표지 발급 과정의 오류와 악용 사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사망이나 전출로 효력이 상실된 표지는 반납을 의무화하고, 무효 표지를 집중 회수할 방침이다. 그동안 수기로 관리했던 부당 사용 시 재발급 제한 현황도 전산화한다.
주차공간 확대도 함께 간다
제도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 중심 발급으로 전환하면 새로운 수요층이 생겨나기 때문에 물리적 주차공간 자체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를 위해 실수요 증가에 따른 전용 주차구역 비율 상향도 검토할 예정이다. 아울러 장애인들이 시설에 갈 때 콜택시 등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전국통합예약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이번 종합 5개년 계획에는 ▲이동권 증진 ▲편리·안전한 시설 이용 보장 ▲정보 접근성 확대 ▲편의 관련 제도 기반 정비 등 4대 추진 전략과 9개 중점 과제가 포함됐다. 장애인 주차표지 제도 개선은 이 중 이동권 증진 전략의 핵심 과제다.
정부가 2000년부터 5년마다 수립해온 편의증진 국가종합계획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시설과 정보에 불편 없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청사진이다. 이번 제6차 계획은 그중에서도 장애인 이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