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테슬라 사이버트럭 저격용 럭셔리 전기 픽업 개발했다 '중단'… 부활 가능성은?
현대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테슬라 사이버트럭을 겨냥한 럭셔리 전기 픽업트럭을 은밀히 개발했다가 프로젝트를 중단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최근 공개된 이미지들을 보면 이 차량은 단순한 디자인 스터디 단계를 훨씬 넘어선, 양산 직전까지 진행된 완성도 높은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포드 F-시리즈 잡기 위한 미국 시장 전략 프로젝트
제네시스의 전기 픽업 프로젝트는 포드 F-시리즈가 압도적 점유율을 보이는 미국 시장을 겨냥해 기획됐다. 한 자동차 디자인 전문지는 제네시스가 공개하지 않은 4개 프로젝트 중 유일하게 공식 명칭조차 없는 이 픽업트럭 개발 과정을 심층 보도했다. 제네시스 디자이너들은 내부적으로 이 차량을 그냥 "더 픽업(The Pickup)"이라고 불렀다는 사실만 봐도 얼마나 급하게 진행됐는지 알 수 있다.
룩 동커볼케(Luc Donckerwolke) 제네시스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는 "전기 픽업? 왜 안 되겠나?"라며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결국 "다른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개발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는 제네시스가 제한된 개발 리소스를 GV90 플래그십 전기 SUV와 마그마 고성능 라인업 등 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모델에 우선 배분했음을 시사한다.

모노코크 버린 바디온프레임, X 그란 에쿠아도르와 DNA 공유
공개된 스케치와 거의 완성된 실물 모델을 보면, 이 전기 픽업은 지난해 뉴욕 오토쇼에서 공개된 X 그란 에쿠아도르 컨셉트의 오프로드 스타일링을 계승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제네시스의 다른 차량들이 사용하는 모노코크 섀시 대신 바디온프레임(body-on-frame) 구조를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본격적인 오프로드 성능 확보를 위한 선택으로, 럭셔리 브랜드가 험로 주행 능력을 진지하게 고려했음을 보여준다.
X 그란 에쿠아도르 컨셉트는 제네시스의 시그니처 디자인 철학인 '애슬레틱 엘레강스(Athletic Elegance)'를 오버랜딩 감성과 결합한 차량으로, 통합형 루프 레일과 분할 개폐식 테일게이트 등 실용적 기능을 담았다. 전기 픽업 역시 이런 디자인 언어를 공유하면서도, 적재함을 갖춘 픽업트럭 특유의 실용성을 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루머에 따르면 플립아웃 방식의 전면 트렁크(프렁크)까지 구상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이버트럭 대항마로서의 가능성과 한계
테슬라 사이버트럭은 2024년 본격 양산에 들어간 이후 북미 전기 픽업 시장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구축했다. 듀얼모터 AWD 모델 기준 325마일(약 523km)의 주행거리와 최대 11,000파운드(약 4,990kg)의 견인력을 자랑하며, 포드 F-150 라이트닝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이버트럭의 급진적 디자인과 논란이 되는 조립 품질은 럭셔리 시장에서 제네시스가 파고들 틈새를 만들어냈다.
제네시스가 개발한 전기 픽업이 양산됐다면, 바디온프레임 구조를 통한 견고함과 제네시스 특유의 정제된 럭셔리 감성으로 사이버트럭과는 전혀 다른 고객층을 공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커볼케가 강조하는 "보상적이지 도전적이지 않은(rewarding, not challenging)" 제네시스의 고성능 철학을 적용한다면, 사이버트럭의 과격함보다는 우아한 럭셔리 픽업으로 차별화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제네시스 마그마 라인업을 소개하며 "벨벳 장갑 속의 철주먹(iron fist in a velvet glove)"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런 접근법은 픽업트럭에도 적용될 수 있는 흥미로운 콘셉트다.
제네시스의 전동화 로드맵, 2026년이 분수령
제네시스는 현재 여러 신차 출시를 앞두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2026년 1월 첫 고성능 전기차 GV60 마그마(650마력)를 공개했고, 플래그십 전기 SUV GV90는 또다시 지연돼 2026년 6월 양산 개시 예정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2025년 전년 대비 10.2% 감소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신모델 부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네시스는 2026년 말 첫 하이브리드 및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모델 출시를 준비 중이다. 특히 GV70 EREV는 2026년 12월 북미, 한국, 유럽 주요 시장에 동시 출시될 예정이며, 소형 가솔린 발전기를 탑재해 약 900km(560마일)의 주행거리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7년에는 X 그란 에쿠아도르 컨셉트 기반의 럭셔리 오프로드 SUV도 계획돼 있다.
전기 픽업 부활 가능성, 희망은 있다
오토앤디자인은 제네시스가 가까운 미래에 이 전기 픽업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컨셉트카를 공개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프로젝트가 완전히 폐기되지 않고 "보류(shelved)"됐다는 표현을 쓴 점도 의미심장하다. 동커볼케 역시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는데, 그의 말투에는 적절한 시점이 온다면 프로젝트를 재개할 여지가 남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제네시스가 단기간 내 픽업트럭 시장에 진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30년 완전 전동화 브랜드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 제네시스는 세단과 SUV 라인업 전동화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 내수 시장 판매 부진을 극복하고 북미와 유럽에서 브랜드 입지를 다지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
한국 시장 전망: 픽업 문화 부재가 최대 장애물
만약 제네시스 전기 픽업이 양산된다 해도, 한국 시장 출시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한국은 승용 픽업트럭 문화가 거의 형성되지 않은 시장이며, 좁은 도로와 주차 여건상 대형 픽업은 실용성이 떨어진다. 제네시스 국내 판매량을 보면 2025년 11월까지 10만 8,715대가 팔려 전년 대비 10.2% 감소했는데, GV60 전기차는 769대에 불과해 전동화 모델의 국내 수요가 여전히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제네시스가 전기 픽업을 개발한다면 이는 철저히 북미 시장을 위한 전략 차량이 될 것이다. 포드 F-150 라이트닝, 쉐보레 실버라도 EV, 리비안 R1T 등이 경쟁하는 북미 전기 픽업 시장은 2026년 이후 본격적인 성장이 예상되며, 럭셔리 세그먼트는 아직 공백이 크다. 하지만 제네시스가 이 시장에 진입하려면 최소 2~3년의 추가 개발 기간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제네시스 전기 픽업은 흥미로운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당분간은 "만약"의 영역에 머물 공산이 크다. 제네시스가 GV90과 X 그란 에쿠아도르 기반 오프로드 SUV로 시장 반응을 확인한 후, 북미 픽업 시장 진입을 재검토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