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남아 자동차 제국' 무너진다…중국 전기차 공세에 10년 우위 '70%대 추락'
중국 전기차 공세로 동남아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차 점유율이 급락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80%대였던 점유율이 70%대로 떨어졌으며, 일본 제조사들은 현지 생산을 축소했다. 공급망 타격 우려도 제기됐다.
오랫동안 동남아 자동차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일본 자동차가 중국산 전기자동차의 공격적인 공세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가속화되는 점유율 급락
동남아시아 최대 자동차 시장인 태국에서 일본 자동차의 위기가 가장 극심하다. 요미우리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10월까지 일본계 자동차 9개사의 태국 내 판매 점유율은 69.8%로, 전년 동기 대비 6.6%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2010년대 80~90%에 달하던 영향력이 몇 년 사이에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3년에 77.8%였던 점유율이 올해 연간 기준 70%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시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일본 자동차의 점유율이 처음으로 90%를 밑돌았으며,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는 82.9%로 추가 하락했다. 동남아 전체 시장의 약 3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이러한 점유율 감소는 지역 전체 시장의 판도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 전기차의 공격적 진출과 시장 장악
동남아 자동차 시장의 판도 변화의 핵심 주체는 BYD를 필두로 한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이다. 태국 신자동차 판매의 85%가 중국산 전기차였던 지난해 통계는 중국 브랜드의 시장 지배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태국 전체 신차 판매량 중 중국산 차량의 점유율은 이미 20%를 넘어섰다.
싱가포르에서는 중국의 BYD가 일본의 도요타를 제치고 판매율 1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BYD는 도심 쇼핑몰과 번화가에 화려한 전시장을 개설하고 식음료 업소와의 제휴를 통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왔다. 말레이시아에서는 BYD가 2024년 베스트셀러 전기차 브랜드로 선정되었으며, 인도네시아에서도 중국 전기차 수입이 전체 전기차 판매량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특히 태국에서 BYD의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상반기 태국 내 전체 신차 판매량에서도 7.8% 점유율을 기록해 4.5%에 그친 미쓰비시를 제치고 4위에 올랐다.
일본 완성차 업계의 생산 축소 가속화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태국 내 생산 기지를 축소하는 결단을 내렸다. 혼다는 태국 공장 2곳에서 진행해온 완성차 생산을 내년 이후 1곳으로 집약할 계획이다. 미쓰비시자동차는 2027년까지 현지 공장 3곳 중 한 곳의 생산을 정지할 예정이다.
태국은 동남아 지역 전역으로 차량을 수출하는 중추적인 거점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일본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감소는 단순히 태국 시장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 일본계 은행 관계자는 완성차 공장의 가동률 저하로 수주가 줄면서 현지 생산거점을 유지하기 어려운 하청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급망 타격과 동남아 '부품 왕국'의 위기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다. 동남아에는 2,700여 개에 달하는 일본계 부품회사들이 진출해 있는 상태다. 이들은 일본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축소와 함께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 지역에 걸쳐 견고하게 구축돼 있던 일본 자동차의 공급망은 동남아에서의 전략적 우위의 핵심이었다. 이 공급망이 흔들리면 단순한 경쟁력 약화를 넘어 지역 내 산업 생태계 전체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하이브리드 전략과 정부 정책의 한계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 라인업 확대로 중국 전기차 공세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태국과 인도네시아 정부의 하이브리드 관련 지원 정책이 제한적인 현실이 이러한 노력을 제약하고 있다. 반면 두 국가 정부는 전기차 시장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어 중국 업체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 제조사들은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생산 및 조립 투자를 확대 중이다. BYD는 태국에서 처음으로 현지 공장에서 차량 생산을 시작했으며, 인도네시아 서자바에는 10억 달러 규모의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25년 말까지 건설 작업을 완료하겠다는 BYD의 계획이 추진된다면 중국 전기차의 동남아 시장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 확실하다.
동남아 자동차 시장의 구도 변화 신호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쇠퇴와 함께 한국 자동차의 존재감도 높아지고 있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의 점유율은 2021년 3.6%에서 2022년 4.6%로 증가했다. 2025년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현지 생산량 4위까지 올라섰으며, 상반기 누적 생산량도 3만 대를 돌파했다.
최근 베트남 시장에서도 일본 업체들이 현지 업체 등과의 판매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동남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경제 성장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 지역의 자동차 시장 변화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1960년대 태국에 진출한 이래 동남아 시장을 석권해온 일본 자동차의 '철옹성'이 중국 전기차의 공격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정책 지원과 현지 생산 투자 강화, 그리고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공세는 동남아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