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의 나라 굴욕인가, 실리인가"... 獨 안방 잠식한 중국산 버스의 공습
독일 최대 운송 기업 DB레기오가 중국 BYD 전기 버스를 대량 구매하며 독일 안방에 중국산 버스 공습이 시작됐다. 보안 우려와 애국심 논란 속, 독일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분석했다.
'전차 군단'의 자부심이 흔들리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폭스바겐의 고향이자 유럽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인 독일이 중국산 전기 버스에 안방을 내주고 있다. 독일 철도 공기업의 자회사가 중국 업체 비야디(BYD)와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에서는 "납세자의 돈으로 중국 배를 불려준다"는 비판부터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다"는 우려까지 터져 나오며 격론이 일고 있다.
'전차군단'의 자존심 구긴 계약… 왜 하필 중국산이었나
24일(현지 시간) 독일 공영방송 SWR과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독일 국영 철도회사 도이체반(DB)의 지역 운송 자회사인 'DB레기오(DB Regio)'는 최근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와 2027년부터 2032년까지 전기 버스 200대를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DB레기오가 진행한 총 3,300대 규모의 버스 교체 사업의 일환이다. 물론 전체 물량의 약 94%에 달하는 3,100여 대는 독일 폭스바겐 그룹 산하의 만(MAN) 트럭버스가 수주하며 체면치레를 했다. 하지만 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상징성이다. 2021년 시범적으로 5대를 도입했던 수준을 넘어, 이제는 중국산 버스가 독일 대중교통의 정식 파트너로 편입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DB레기오 측은 이번 결정이 철저한 '총소유비용(TCO)' 평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차량 가격뿐만 아니라 유지보수, 에너지 효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중국산의 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도입되는 BYD 버스는 헝가리에 위치한 현지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으로, 물류비용 절감과 부품 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한 점도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BYD가 유럽 시장을 겨냥해 공개한 시외버스 모델. DB레기오가 도입할 모델 역시 도시 간 이동을 담당할 인터시티급 모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으로 중국 돕나"… 거세지는 보안 논란과 비판
독일 정치권은 즉각 반발했다. 핵심은 '안보'와 '경제 애국심'이다. 최근 유럽 내에서 중국산 통신 장비와 스마트 모빌리티 기기에 대한 데이터 유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공공 인프라인 시내버스를 중국 업체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다.
녹색당 콘스탄틴 폰 노츠(Konstantin von Notz) 원내 부대표는 현지 언론을 통해 "중요 기반 시설에 대한 보안 정책 고려가 충분했는지 의문"이라며 "버스 전체를 원격으로 제어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해킹)을 배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버스에 내장된 심(SIM) 카드나 제어 소프트웨어를 통해 민감한 운행 데이터가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백도어'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집권 사민당(SPD)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라르스 클링바일(Lars Klingbeil) 재무장관은 "독일 도시에는 이미 벤츠와 만(MAN)이 만든 훌륭한 버스들이 달리고 있다"며 "산업 입지에 대한 '건강한 애국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독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자국 산업 보호보다는 가격 논리에 치우쳤다는 비판이다.
무너지는 기술 장벽, 유럽 자동차 패권의 지각변동
이번 사건은 단순한 버스 구매 계약을 넘어, 독일 자동차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불과 5년 전인 2017년만 해도 유럽 전기 버스 시장에서 10%대 점유율에 머물던 중국 업체들은 2023년 기준 24% 이상으로 영향력을 급격히 확대했다.
전문가들은 독일 제조사들이 내연기관차의 영광에 취해 전동화 전환 타이밍을 놓친 사이, 중국 업체들이 배터리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기술 장벽을 넘어섰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일부 독일 지방 운수 업체들은 "중국산 버스가 독일산보다 약 1억 7천만 원(10만 유로) 저렴한데 주행거리는 대동소이하다"며 실용적인 선택을 옹호하고 있다.
결국 DB레기오의 선택은 '애국심 부족'이 아니라 '시장 경쟁력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온다. 안방에서조차 가성비와 기술력으로 중국산을 압도하지 못하는 현실이 계속된다면,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의 위상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베를린에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