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FSD 한국 상륙 초읽기: 규제 지각변동이 만든 '2026년의 기회'

테슬라 차주들에게 FSD(Full Self-Driving)는 끝나지 않는 희망고문이었다. 2025년 11월 테슬라 코리아가 서울 도심 주행 영상과 함께 "Coming Soon"을 발표했을 때도 많은 이들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2025년 12월, 테슬라는 마침내 한국을 세계 7번째 FSD 출시 국가로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기능 업데이트가 아니다. 국내 등록된 11만 대 이상의 테슬라 차량이 일제히 자율주행 능력을 얻게 되는, 모빌리티 역사의 분기점이다.

테슬라 FSD 한국 상륙 초읽기: 규제 지각변동이 만든 '2026년의 기회'
테슬라 FSD 한국 상륙 초읽기: 규제 지각변동이 만든 '2026년의 기회'

더 이상 '언젠가'가 아니다: 11만 대가 기다리는 혁

더욱 주목할 점은 이 급속한 전개의 배경에 UN 제네바 자율주행 규정 협의체(GRVA)의 패러다임 전환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네덜란드 RDW가 2026년 2월 테슬라 FSD 임시승인을 추진하면서, 유럽 전역과 한국으로 이어지는 도미노의 첫 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라이다 중심의 자율주행 전략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은 지금, 카메라 기반 AI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규제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규제 철학의 대전환: '과정'에서 '결과'로

자율주행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규제였다. 그것도 20세기적 사고방식에 갇힌 '룰 베이스(Rule-based)' 규제였다. 차선 변경 시 깜빡이를 정확히 3초간 유지해야 하는지, 핸들을 몇 초마다 잡아야 하는지 같은 세부 규칙들이 AI의 발목을 잡았다. 문제는 테슬라의 E2E(End-to-End) AI 방식이다. 신경망이 수억 킬로미터의 주행 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판단하는 이 시스템은, "어떤 논리로 그 판단을 내렸는가"를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블랙박스 구조다. 전통적 규제 틀로는 승인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UNR 171(DCAS, 운전자 제어 보조 시스템) 규정의 도입은 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이제 국제 사회는 AI가 '어떻게' 운전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게' 운전하는지를 평가하기로 합의했다. 성과 기반(Performance-based) 접근법이다. 인간 운전자도 긴급 상황에서는 중앙선을 넘고, 눈치껏 끼어들기를 한다. AI에게도 그만한 유연성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제조사가 카메라를 쓰든 라이다를 쓰든, 룰 기반 코딩을 하든 신경망을 쓰든 상관없다. 결과적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이면 된다는 철학의 대전환이다.​

이는 테슬라 입장에서는 게임 체인저다. 그동안 "설명 불가능한 AI"라는 꼬리표 때문에 규제 문턱을 넘지 못했던 FSD가, 이제는 실제 주행 성능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의 복잡한 도로 환경—비정형 차선, 난폭한 끼어들기, 수시로 튀어나오는 이륜차와 보행자—은 오히려 테슬라에게 최고의 학습 데이터를 제공하는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속도로 핸즈프리 시대의 공식 개막

UNR 171이 가져온 가장 극적인 변화는 '시스템 주도 기동(System Initiated Maneuver)'의 허용이다. 이는 운전자가 명령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스스로 차선을 변경하고, 램프로 빠져나가고, 앞차를 추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레벨 2+ 자율주행의 핵심이 바로 여기 있다. 기존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는 운전자가 명령을 내리면 시스템이 '보조'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DCAS는 시스템이 주도권을 쥐고, 운전자는 감독자 역할만 하는 구조로 진화했다.​

특히 자동차 전용도로(고속도로 포함)에서는 완전한 핸즈프리 주행이 허용된다. 일반 도로에서는 여전히 주기적인 핸들 파지 경고가 발생할 수 있지만, 시스템이 주행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FSD의 핵심 기능들이 모두 해금된 것이나 다름없다. 2025년 12월 한국에 출시된 테슬라 FSD Supervised는 바로 이 UNR 171 기준을 충족시킨 레벨 2 시스템이다.

현장의 반응은 뜨겁다. 한국 도로의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FSD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북미 대비 훨씬 좁은 차선, 예측 불가능한 이륜차, 갑작스러운 보행자 출현 등은 여전히 도전 과제다. 하지만 테슬라의 E2E AI는 이 모든 상황을 데이터로 학습하며 빠르게 진화한다. 한국 시장은 테슬라에게 글로벌 자율주행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최적의 훈련장인 셈이다.​

네덜란드 숏컷: 일론 머스크의 우회 전략

UN WP29 협약에 따른 공식 절차대로라면 FSD의 유럽 전역 승인은 2027년 1월경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이 타임라인을 견딜 수 없었다. 그가 선택한 승부수는 '네덜란드 RDW(Rijksdienst voor het Wegverkeer)'였다.

네덜란드는 테슬라 유럽 본사가 위치한 국가다. RDW는 첨단 기술에 매우 우호적이며 진취적인 성향으로 유명하다. 테슬라는 2026년 2월 RDW를 통해 FSD 임시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이 '네덜란드 숏컷'이 성공하면, 2027년이라는 공식 일정을 훌쩍 뛰어넘어 당장 올해 안에 유럽 전역에서 FSD를 활성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여기서 핵심은 E-Mark(유럽형식승인) 제도다. UNECE 가입국(56개국) 중 어느 한 곳에서 승인을 받으면, 다른 가입국들도 이를 상호 인정해야 할 법적 의무가 발생한다. 네덜란드는 국가 코드 E4를 부여받은 UNECE 핵심 회원국이다. RDW가 FSD에 E-Mark를 찍는 순간, 이는 유럽연합 전체로 확산되는 도미노의 시작이 된다.​

물론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자동차 강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EU 내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면 유럽 전체에 FSD가 허용된다. 자동차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 다수의 EU 국가들은 FSD를 막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자국민들에게 최신 자율주행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 결국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승인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도미노 효과: 유럽의 승인이 한국의 승인이 되는 이유

유럽의 승인이 한국과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강력한 국제법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한국은 국가번호 E51을 부여받은 UNECE 가입국이다. WP29 협약에 따라 가입국 중 어느 한 곳(예: 네덜란드 E4)에서 승인된 기술에 E-Mark가 찍히면, 다른 가입국들도 이를 상호 인정해야 할 법적 의무가 생긴다.

물론 한국 정부가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중국산 모델 Y나 테슬라 FSD의 전면 도입을 늦추고 싶어 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와 기아는 라이다 기반 자율주행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으며, 테슬라 FSD의 급속한 확산은 이들에게 큰 충격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제 협약에 따른 '안전 규정 상호 인정' 원칙 때문에, 정부가 이를 법적으로 거부할 명분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테슬라는 국내에서 5만 5594대를 판매하며 전체 전기차 판매 2위(현대차 5만 3529대, 기아 5만 9939대)를 기록했다. 이미 국내 도로를 달리는 11만 대 이상의 테슬라 차량이 FSD 활성화를 기다리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승인이 나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 한국도 이 파도를 막아설 수 없게 된다. 규제의 도미노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대차의 딜레마: 라이다냐 카메라냐

테슬라 FSD의 한국 상륙은 현대차와 기아에게 전략적 재편을 강요하고 있다. 현대차는 그동안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삼아 라이다(LiDAR) 기반 자율주행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라이다는 레이저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3D로 정밀하게 인식하는 센서로, 안전성은 높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반면 테슬라는 카메라와 AI만으로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비전 기반 접근법을 택했다.

문제는 테슬라의 카메라 기반 FSD가 한국의 복잡한 도로에서도 실전 성능을 입증하면서, 라이다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라이다가 더 안전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율,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화 속도 측면에서 카메라 기반 AI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현대차가 수천억 원을 쏟아부은 라이다 전략이 시장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규제 환경의 급속한 변화다. UNR 171의 도입으로 '결과 중심' 평가 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라이다든 카메라든 상관없이 '실제로 얼마나 안전한가'만이 중요해졌다. 현대차가 아무리 라이다를 강조해도, 소비자들은 당장 쓸 수 있는 테슬라 FSD에 더 끌릴 수밖에 없다. 한국 자율주행 시장의 주도권이 빠르게 테슬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10만 대의 자율주행차가 도로에 깔리는 날

우리는 지금 자율주행 역사의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2026년 2월 네덜란드 RDW의 승인이 떨어지면, 유럽 전역과 한국에서 일제히 FSD가 활성화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능 업데이트가 아니다. 렌터카와 택시 생태계를 뒤흔들 모빌리티의 지각변동이다.

한국 정부와 현대차는 '눈을 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겠지만, 국제법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막아설 수는 없다. E-Mark 상호 인정 체계는 이미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도 그 틀 안에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미래는 공포지만,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다. 자율주행의 시간표는 이제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