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단 시장의 비운을 깨다, 쏘나타 '40년의 유산'을 품고 1980년대로의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현대차 쏘나타가 1985년 1세대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레트로 디자인과 '아트 오브 스틸' 철학을 담아 2026년 말 재탄생할 예정이다. DN9 코드명으로 개발 중인 차세대 쏘나타는 첨단 기술과 복고 감성을 결합해 세단 시장의 부활을 노리는 현대차의 전략적 승부수다.
1985년 타임머신을 탄 중형 세단이 온다. 현대자동차가 추진 중인 차세대 쏘나타는 단순한 풀체인지가 아니다. 역사와 혁신이 충돌하는 순간, 세단 시장의 존폐를 두고 벌여온 5년의 치열한 침묵을 깨부수는 대역전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레트로 감성의 재해석, '각지고 직선적인 실루엣'의 귀환
차세대 쏘나타는 공식 코드명 'DN9'로 명명되며 2026년 말 국내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북미 시장 기준으로는 2027년형 신모델로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가 과감하게 선택한 디자인 방향은 기존 세단의 보수적 관성을 깨뜨리는 파격이다.
1세대 쏘나타가 1985년 등장했을 때 자동차 시장에서 갖던 지위는 압도적이었다. 당시 국산차 최고 수준의 럭셔리함을 표현한 '각지고 직선적인 실루엣'은 단순함을 강점으로 삼는 시대 정신을 반영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현대차는 그 모멘텀을 다시 불러일으키기로 결단했다.
신차는 최근 선보인 쿠페형 패스트백 스타일에서 벗어난다. 현대차가 최신 기함 넥쏘에 처음 적용한 '아트 오브 스틸(Art of Steel)' 디자인 언어를 대거 투입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현대자동차의 미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의하는 설계 철학의 표현이다.
'아트 오브 스틸'의 철학, 금속의 구조감을 드러내다
'아트 오브 스틸'은 철이 가진 순수한 물성과 구조적 강인함, 세련된 감성을 담아낸 현대차의 신규 디자인 언어다. 우주항공과 건축 기술에서 착안한 '수직 벤딩 구조'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볼륨의 긴장감과 탄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기존 세단 디자인이 곡선의 우아함을 강조했다면, 아트 오브 스틸은 직선의 강건함과 구조의 명확성을 전면에 배치한다. 이는 심플함을 통해 품질감을 드러내는 미니멀리즘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복잡한 곡선 대신 금속 재질이 갖는 본연의 강인함을 강조하는 설계다.
현대차 관계자는 "철이라는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 언어는 앞으로 다양한 차종에서 형태는 달라도 일관된 조형과 감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차만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차세대 쏘나타가 단순한 개별 모델 차원이 아니라, 브랜드 전체의 미래 지향점을 담은 선언문임을 의미한다.
세단 시장의 '판도 변경' 가능성, 역사가 답이 된다
세단 시장은 지난 10년간 SUV 열풍 속에서 존폐의 기로에 섰다. 2010년대 후반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 SUV가 가장 보편적인 패밀리카로 자리잡으면서, 세단 수요는 급격히 감소했다. 쏘나타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3년 쏘나타 디 엣지(부분변경 모델)까지 등장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점점 쌀해지고 있었다.
현대차가 1985년의 유산에 주목한 이유는 단순 노스탤지어 마케팅이 아니다. 당시 쏘나타는 "VIP를 위한 고급 승용차"라는 명확한 포지셔닝으로 시장을 지배했다. 정해진 형식에서 벗어나 정통성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소비자들에게 '레트로-미래주의(Retro-Futurism)'는 새로운 감각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세대별 쏘나타의 진화 과정을 보면 이같은 전략의 확률이 높아진다. 6세대 쏘나타(2009~2014)는 '플루이딕 스컬프처' 디자인 철학으로 유려한 곡선과 쿠페 스타일을 접목해 중형차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당시 그 파격성은 국제 자동차 시장에서 '세단 혁신'으로 평가받았다. 세 세대를 건너뛴 지금, 역사는 또 다른 파격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기술의 진화, 첨단성을 품은 귀향
DN9의 경쟁력은 디자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차는 자사의 인공지능 플랫폼 'Gleo AI'를 탑재해 운전자의 주행 습관과 상황에 맞춘 지능형 지원 기능을 제공할 계획이다. 레벨 2.5 수준의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과 반자율주행 기능도 한층 강화된다.
파워트레인도 다양화될 예정이다. 기존의 1.6L, 2.0L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LPG 외에 고출력 트림과 마일드 하이브리드(MHEV) 시스템이 신규 추가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차의 H-트랙(H-Trac) 사륜구동 시스템이 탑재될 가능성이 거론되며, 주행 안정성과 접지력 강화가 기대된다. 다만 전기차(EV) 버전은 이번 세대에서 제공되지 않을 것으로 전해진다.
1985년 1세대 쏘나타가 "국산차 최초의 크루즈 컨트롤과 전동 시트, 전동식 사이드미러"로 당대 기술의 정점을 찍었다면, DN9는 AI와 반자율주행이라는 미래형 편의장비로 같은 위상을 다시 정립하려 한다. 40년의 간극을 기술로 메우는 전략이다.
'단종설'을 딛고 일어나는 전략적 도박
2023~2024년 '쏘나타 단종설'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속삭임이었다. 세단 판매 부진과 SUV로의 고객 이동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대차는 이를 포기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혁신적 변화'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는 현대자동차의 뚜렷한 의지를 드러낸다. 디자인 언어 '아트 오브 스틸'을 쏘나타에 우선 적용함으로써, 중형 세단을 브랜드의 미래상을 입증하는 '플래그십 뮤즈'로 재정의하겠다는 결정이다. 앞으로 출시될 다양한 현대차 모델들이 같은 디자인 철학을 공유할 것이므로, 쏘나타의 성공은 전체 라인업의 신뢰도를 결정하는 첫 번째 테스트가 될 것이다.
쏘나타 그 다음, 세단의 부활인가 침몰인가
차세대 쏘나타의 등장은 단순한 모델 교체가 아니라 세단 시장 전체에 대한 '묻는 말'이다. 레트로 감성과 첨단 기술의 결합이 과연 SUV 중심의 이 시대에 중형 세단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답은 "과거와 미래의 접점을 찾는 것"이다. 1985년의 직선적 아름다움과 2026년의 구조적 강인함이 만나는 지점에서, 쏘나타는 새로운 세단의 미학을 선언할 준비를 하고 있다. 40년의 진화가 만들어낸 유산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 고객들이 왜 '세단'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DN9에 부여된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