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량 반토막과 가격 인상의 역습, 1월 자동차 시장이 보낸 경고장
1월 내수 시장은 영하의 기온보다 더 시퍼렇게 얼어붙었다. 연말 1만 대를 돌파했던 주력 모델의 판매량이 한 달 만에 반토막 나는 판매 쇼크가 현실화됐다. 단순한 연초 효과로 치부하기엔 시장의 균열이 깊고 날카롭다. 무엇이 소비자의 지갑을 단숨에 닫게 했으며, 이 차가운 불황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승자는 누구인가. 1월 판매 데이터가 보낸 경고장을 해부한다.
가격이 지배한 전기차 시장의 대반전
침체된 전기차 시장을 움직이는 유일한 레버리지는 결국 가격임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1월 전기차 판매량은 보조금 확정과 제조사들의 파격적인 인하 정책에 따라 극명한 희비 쌍곡선을 그렸다.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인 모델은 현대차 아이오닉 6다. 지난해 12월 13대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았던 이 모델은 1월 245대로 늘어나며 판매량이 20배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 보조금 공백기를 가격 정책으로 정면 돌파한 결과다.
기아의 EV 시리즈 역시 실속파 소비자들의 선택을 이끌어냈다. 특히 EV5는 스탠다드 모델 출시와 공격적인 가격 인하가 맞물리며 12월 100대 수준에서 1월 847대로 판매량이 폭증했다. 이뿐만 아니라 EV3는 전월 대비 5배, EV4는 3배에 가까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시장의 수요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줬다. 이는 전기차 캐즘(Chasm)을 극복할 열쇠가 기술적 화려함이 아닌 실질 구매가에 있음을 시사한다. 가격 경쟁력이 전기차의 생사 갈림길을 결정지은 것처럼,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내연기관 모델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위의 굴욕과 그랜저 판매량 반토막의 진실
오랜 기간 국내 시장의 절대 권력으로 군림해 온 그랜저의 급락은 이번 1월 시장이 던진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다. 지난해 12월 1만 대를 넘기며 국산차 판매 1위를 수성했던 그랜저는 1월 5,016대 판매에 그쳤다. 불과 한 달 만에 판매량이 50% 수준으로 급감하며 순위 또한 6위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러한 급락은 복합적인 시장 심리가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2026년 예정된 40주년 기념 이벤트와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대한 대기 수요가 현행 모델의 구매 동기를 약화시켰다. 여기에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고가 세단에 대한 할부 금융 부담이 소비자의 발목을 잡은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세단 시장의 권위가 흔들리는 사이, 목적성이 뚜렷한 픽업트럭 시장에서는 실용 전략을 앞세운 치열한 생존 싸움이 전개됐다.
픽업트럭 대결에서 입증된 가성비의 힘
픽업트럭 시장은 브랜드 파워보다 실질적인 실속이 우선시되는 소비 트렌드를 가장 선명하게 증명했다. KGM의 신형 무소는 1월 1,123대를 판매하며 기아의 야심작 타스만(376대)을 세 배 이상 따돌렸다. 기아가 대대적인 마케팅을 쏟아부었음에도 KGM에 완패한 배경에는 전략적 패착이 숨어 있다.
타스만은 출시 초기부터 디자인 논란에 휩싸인 데다, 3,750만 원부터 시작하는 높은 가격대가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픽업 시장의 핵심 수요인 디젤 엔진을 배제한 점이 치명적인 실책으로 꼽힌다. 반면 무소는 성능과 디자인을 개선하면서도 시작 가격을 2,990만 원으로 동결했고, 디젤 라인업을 유지하며 픽업 본연의 기능성과 가성비를 동시에 공략했다. 실속을 챙기려는 소비자의 움직임은 중형 세단 시장의 파격적인 프로모션 현장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신차 효과를 압도한 할인의 유혹
불황기의 자동차 시장에서 신기술이나 디자인은 파격적인 할인 프로모션 앞에서 무력해지곤 한다. 현대차 쏘나타의 선전이 대표적이다. 쏘나타는 별다른 신차 이슈가 없었음에도 1월 판매량이 전월 대비 20% 이상 증가한 5,143대를 기록했다. 이는 재고차 대상 300~400만 원 규모의 대대적인 할인 정책이 주효했던 결과다.
특히 쏘나타의 판매량 속에는 중국에서 역수입한 택시 물량 1,500대가 포함되어 있어, 순수 개인 구매 외에도 실속형 비즈니스 수요를 완벽히 흡수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프로모션이 적었던 기아 K5는 쏘나타의 절반 수준인 2,752대에 머무르며 할인 정책의 파괴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국내 브랜드 간의 가격 전쟁이 이토록 치열한 가운데, 수입차 시장에서는 더 거대하고 위협적인 존재가 국경을 넘어 몰려오고 있다.
수입차 시장을 뒤흔드는 거센 중국의 역습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막연한 우려가 아닌 숫자로 증명된 공포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는 1월 한 달간 실라이언 7(656대)과 아토 3(634대)을 합쳐 총 1,290대를 판매했다. 이는 수입차 시장의 전통 강자인 볼보(1,037대)를 단숨에 제친 성과로, 수입차 시장의 판도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과거의 편견을 압도하는 가성비와 주행 성능은 실용을 중시하는 수입차 소비자들의 구매 로직을 바꿔놓고 있다. BYD의 이 같은 약진은 수입차 판매 3위인 테슬라(1,966대)를 맹렬히 추격하며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들을 위협하고 있다. 수입차 시장의 질서가 요동치는 혼란 속에서도, 국내 시장의 정점에는 변치 않는 단 하나의 모델이 하이브리드라는 방패를 들고 군림하고 있다.
쏘렌토가 증명한 하이브리드 불패 신화
기아 쏘렌토는 1월 8,388대를 판매하며 국산차 전체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쏘렌토의 압도적 지배력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의 승리다. 전체 판매량의 약 70%가 하이브리드 모델에 집중되었으며, 이는 전기차의 과도기적 불안감과 디젤의 퇴장 사이에서 하이브리드가 완벽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음을 입증한다.
경쟁 모델인 싼타페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인한 호불호 문제로 고전하는 사이, 쏘렌토는 세련된 디자인과 6~7인승의 높은 거주 편의성을 내세워 우위를 점했다. 특히 쏘렌토는 동급 SUV 중 유일하게 디젤 엔진을 유지하며 틈새 수요까지 장악하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했다. 쏘렌토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나, 2월 이후 보조금 풀 물량 집행과 BYD를 필두로 한 수입 브랜드들의 공세가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재편할지 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