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야 스마트폰이야?" 대화 맥락까지 파악하는 AI 비서 탑재된 역대급 그랜저 등장

현대자동차가 신규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플레오스 커넥트'와 생성형 인공지능 '글레오'를 탑재한 7세대 부분 변경 모델 '더 뉴 그랜저'를 공개하며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전환을 본격화했다. 1998년 이후 28년 만에 기아에 월간 내수 판매 1위를 내준 상황 속에서도, 지난달 전년 동기 대비 14.2% 증가한 6,905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국산 승용차 2위를 지킨 그랜저를 앞세워 차량의 모빌리티 소프트웨어 경험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야 스마트폰이야?" 대화 맥락까지 파악하는 AI 비서 탑재된 역대급 그랜저 등장
28년 만의 역전극과 현대차의 승부수, '더 뉴 그랜저'가 연 SDV 시대의 실체

1위 내준 현대차의 굴욕, 그랜저가 홀로 버틴 내수 시장의 명암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견고했던 위계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2026년 4월 국내 완성차 판매 실적은 현대자동차에 있어 '충격' 그 자체였다. 기아가 5만 5,045대를 판매하며 5만 4,051대에 그친 현대차를 앞지른 것이다. 이는 1998년 현대차그룹 통합 이후 28년 만에 처음 발생한 역사적 사건으로, 내수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현대차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이번 부진의 결정적 원인은 공급망의 예기치 못한 타격에 있었다. 지난 3월 발생한 핵심 협력사 ‘안전공업’의 화재로 인해 2.5 가솔린 터보 엔진 수급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대차의 수익성을 책임지던 제네시스 G80, GV80 및 팰리세이드 등 고부가가치 모델의 생산이 줄줄이 발목을 잡혔다. 실제로 현대차의 내수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19.9% 감소하며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면초가의 위기 속에서도 '그랜저'만큼은 독보적인 지배력을 과시했다. 그랜저는 전년 동기 대비 14.2% 성장한 6,905대를 기록하며 현대차 내수 판매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팰리세이드가 생산 차질 속에서도 60% 이상의 반등을 시도했으나, 실질적으로 국산 승용차 판매 2위 자리를 지키며 브랜드의 체면을 살린 것은 그랜저였다. 이제 현대차는 단순한 생산 정상화를 넘어, 시장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전략적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외형 변화가 아닌, 자동차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로의 전환이다.

자동차를 넘어 스마트 디바이스로, '플레오스 커넥트'와 '글레오'의 결합

현대차가 '더 뉴 그랜저(7세대 부분 변경)'를 통해 선언한 핵심 가치는 SDV로의 본격적인 체질 개선이다. 그랜저는 기존의 ccNC(connected car Navigation Cockpit) 시스템을 과감히 탈피하고,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AAOS) 기반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플레오스 커넥트(Pleos Connect)'를 현대차 최초로 탑재했다. 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라이프 사이클을 분리하여, 차량 구매 후에도 무선 업데이트(OTA)를 통해 차량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진화시키는 메커니즘의 실체를 구현한 것이다.

플레오스 커넥트는 차량을 하나의 거대한 스마트 디바이스로 탈바꿈시킨다. 운전자는 개방형 앱 생태계인 ‘플레오스 플레이그라운드’를 통해 유튜브, 스포티파이, 네이버 지도 등 최적화된 외부 앱을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다. 특히 현대차는 개발자 전용 플랫폼을 통해 외부 개발자의 참여를 유도하며 애플의 앱스토어와 유사한 독자적인 생태계 확장을 꾀하고 있다.

여기에 생성형 AI '글레오(Gleo)'의 등장은 사용자 경험(UX)을 지능형 비서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대형 언어 모델(LLM)을 기반으로 구축된 글레오는 단순한 음성 인식을 넘어 고도의 맥락 이해 능력을 갖췄다. "저녁에 제육볶음을 할 건데 마트에서 무엇을 사야 하느냐"는 일상적인 질문에 식재료 리스트를 제안하거나, "거기 주차 가능해?"와 같은 지시대명사를 사용한 연속 대화(Multi-turn)도 완벽히 수행한다. 17인치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구현되는 글레오 AI는 운전자의 의도를 파악해 차량 제어부터 정보 검색까지 능동적으로 지원하며 SDV가 제공할 수 있는 편의성의 정점을 보여준다.

샤크 노즈의 공격적 진화와 하이테크 라운지로 거듭난 실내 공간

7세대 부분 변경으로 돌아온 더 뉴 그랜저의 외관은 현대차 세단 라인업의 정체성을 한층 공격적으로 다듬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변화는 프런트 오버항을 15mm 늘려 구현한 '샤크 노즈(Shark Nose)' 형상이다. 돌출된 전면부와 베젤리스 타입으로 더욱 얇아진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는 미래지향적인 플래그십의 인상을 극대화한다. 또한 현대차 세단 최초로 적용된 '히든 타입 안테나'는 돌출형 샤크핀 안테나를 삭제하여 매끄러운 루프 라인을 완성함으로써 정제된 미학을 실현했다.

실내 공간은 단순한 탑승 구역을 넘어 '하이테크 라운지'로 진화했다. 현대차 최초로 도입된 '전동식 에어벤트'는 노출된 조작 노브를 없애 디자인 일체감을 높였으며, 디스플레이를 통해 풍향을 정교하게 제어한다. 여기에 고분자 분산형 액정(PDLC) 필름을 활용한 '스마트 비전 루프'는 별도의 블라인드 없이 루프 투명도를 6개 영역으로 나누어 조절할 수 있어 압도적인 개방감을 선사한다.

뒷좌석 경험 역시 대폭 강화되었다. 동급 하이브리드 세단 최초로 적용된 2열 리클라이닝 및 통풍 시트는 이 차가 오너 드리븐과 쇼퍼 드리븐의 경계를 허물고자 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감성적 공간 혁신은 정차 중에도 엔진 구동 없이 공조와 미디어를 즐길 수 있는 차세대 파워트레인의 효율성을 만나 비로소 완성된다.

세단 최초의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성능과 가격의 상관관계

파워트레인의 핵심은 현대차 세단 중 최초로 탑재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변속기에 통합된 구조로, 시동과 발전을 담당하는 P1 모터와 주행 및 회생 제동을 전담하는 P2 모터가 병렬로 결합된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합산 최고출력은 기존 대비 9마력 향상된 239마력을 발휘하며, 예상 복합 연비는 18.4km/L에 달해 고성능과 고효율을 동시에 잡았다. 특히 '하이브리드 스테이 모드'와 고속도로 바디 모션 제어(HBC) 기술은 전동화 시대에 걸맞은 정숙성과 승차감을 제공한다.

다만, 공격적인 기술 탑재는 필연적으로 '가격 인상'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하이브리드 모델의 시작 가격은 프리미엄 트림 기준 4,864만 원으로, 기존 대비 무려 510만 원이나 인상되었다. 캘리그래피 트림에서 모든 옵션을 더할 경우 가격은 6,400만 원에 육박한다. 이는 제네시스 G80의 엔트리 가격대와 직접적으로 겹치는 구간이다.

시니어 저널리스트의 시각에서 볼 때, 이는 시장에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소비자들이 제네시스라는 브랜드의 명성과 후륜구동의 가치 대신, 그랜저가 제공하는 최신 SDV 플랫폼(플레오스)의 혁신적 경험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격 저항선이 높아진 만큼, 그랜저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브랜드의 계급 체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가 시장 안착의 핵심 관건이 될 전망이다.

2,000만 대 SDV 생태계를 향한 질주, '더 뉴 그랜저'가 남긴 과제

이번 '더 뉴 그랜저'의 출시는 단순한 인기 모델의 복귀가 아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커넥티드카 2,000만 대를 확보하고 플랫폼 통합을 완수하겠다는 현대차그룹의 거대한 SDV 로드맵이 실현된 첫 번째 실체다. 그랜저에 탑재된 플레오스 커넥트는 향후 기아와 제네시스로 확산될 그룹 통합 플랫폼의 표준이 될 것이며, 이는 현대차가 하드웨어 제조사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으로 진화했음을 증명하는 지표다.

현대차는 28년 만의 내수 1위 역전이라는 뼈아픈 기록을 SDV로의 대전환이라는 기술적 도약으로 정면 돌파하려 하고 있다. 자동차가 이동 수단을 넘어 생활 공간이자 서비스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시대에, 그랜저가 제시한 새로운 프리미엄의 기준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붙잡아둘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곧 브랜드의 생존과 직결되는 지금, 그랜저의 어깨에는 현대차의 미래 권력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