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철수, 한국은 진격"...토요타 홈그라운드에 넥쏘 꽂은 현대차의 '역습'
2025년 11월, 전북 새만금 일대 도로가 수소전기차 역사의 무대가 됐다. 현대자동차의 차세대 수소전기차 '디 올 뉴 넥쏘'가 단 한 번의 충전으로 1,400.9km를 주행하며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2021년 토요타 미라이가 수립한 기존 기록 1,359.9km를 4년 만에 41km 이상 앞질렀다. 수소전기차 기술의 주도권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선언이자,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 던진 강력한 메시지였다.
36시간의 질주, 기록의 현장
2025년 11월 14~15일, 현대차 넥쏘는 군산 수소충전소에서 출발해 새만금 주변 도로를 약 36시간 동안 순환 주행했다. 1호차가 1,400.9km, 2호차가 1,360.7km를 기록하며 두 대 모두 토요타 미라이의 종전 기록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뒀다. 이 도전에는 유명 유튜버들도 동행해 생생한 현장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며 국내외 자동차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인 주행거리 720km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수치라는 점에서 기술적 의미는 더욱 크다.

28년 투자가 빚은 기술
이번 기록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현대차는 1998년부터 수소연료전지 기술 개발에 착수해 28년간 한 우물을 팠다. 디 올 뉴 넥쏘는 단순한 디자인 변경을 넘어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의 획기적 진화를 보여준다. 새로 개발된 연료전지 시스템과 전력 전자장치(PE)를 통해 총 시스템 출력 190kW, 제로백(0→100km/h) 가속 7.8초, 최고속도 179km/h 이상의 주행 성능을 확보했다. WLTP 기준 약 826km의 주행거리와 5분대 수소 충전 시간도 실용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고압 수소 탱크에는 약 6.69kg의 수소가 저장되며, 능동형 노면소음 제어(ANC-R) 기술과 흡음 타이어가 더해져 고급 세단에 버금가는 정숙성도 갖췄다.
글로벌 점유율, 판도가 바뀌다
시장 데이터는 기술 경쟁의 결과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수소연료전지차(FCEV) 시장은 전년 대비 24.4% 성장해 총 1만6,011대가 판매됐다. 현대자동차는 넥쏘를 중심으로 6,861대를 팔아 시장 점유율 42.9%로 1위를 지켰으며, 판매량은 전년 대비 78.9% 급증했다. 반면 2위인 토요타는 미라이와 크라운을 합쳐 1,168대 판매에 그치며 전년 대비 39.1% 감소했고, 점유율은 7.3%로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한국 시장에서는 수소차 판매가 84.4% 증가한 6,802대를 기록했다.
수소차 종주국의 침묵
한때 수소경제를 국가 전략으로 삼았던 일본의 현재는 초라하다. 일본 국내 수소 충전소는 운영 부담과 이용률 저하로 일부 거점이 축소되고 있으며, 수소 승용차 판매도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토요타가 승용 부문에서 전기차에 집중하겠다고 방향을 틀었고, 혼다는 과거 선보인 수소차 'FCX 클라리티'의 생산을 중단했다. 닛산도 수소 승용차 개발을 사실상 멈춘 상태로, 일본 수소 승용차 시장에서는 뚜렷한 경쟁자가 사라지고 있다. 2025년 유럽 시장에서는 미라이와 넥쏘를 합쳐 566대가 팔리며 전년 대비 23.1% 역성장했고, 일본 시장 내 미라이와 크라운 판매도 37.3% 하락하며 부진이 지속됐다.
토요타의 안방으로 간다
현대차는 바로 이 공백을 정면 돌파의 기회로 삼고 있다. 2025년 10월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재팬 모빌리티쇼 2025'에 처음으로 참가해 디 올 뉴 넥쏘를 일본 시장에 처음 공개했다. 2026년 3월에는 도쿄에서 열린 '국제 수소&연료전지 엑스포 2026'에도 참가해 AI를 활용한 24시간 충전 로봇과 도심 설치가 쉬운 소형 충전소 등 수소 밸류체인 전반의 완성도를 선보였다. 신형 넥쏘는 2026년 상반기 중 일본 시장에 공식 출시될 예정으로, 이는 2009년 일본 승용차 시장에서 철수한 이후 다시 현지 시장을 두드리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현대차그룹의 일본 내 판매량은 2024년 607대에서 2025년 1,111대로 전년 대비 183% 증가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착실히 쌓고 있는 배경도 작용한다.
기술 리더십을 넘어 생태계 주도로
현대차의 일본 공략은 단순히 차 한 대를 파는 것이 아니다. 한일 수소 대화 등 국가 간 협력 채널을 주도하며 일본 내 정책·산업 네트워크 확대에도 힘을 쏟고 있다. 수소 생산부터 충전 인프라, 완성차 판매까지 이어지는 수소 밸류체인 전반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일본에서 기술력과 판매량을 동시에 입증할 경우 현대차의 글로벌 수소 리더십이 한층 공고해지고, 이후 유럽과 북미 등 주요 시장 확산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소차의 상징적 본고장에서 현대차가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