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인도 집중 투자, 미국 의존 탈피의 마지막 도박

현대차가 북미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인도에 약 6.8조 원을 투자했다. 현지인 CEO 선임, 26종 신차 출시, 하이브리드 중심 전략으로 2030년 인도 시장 점유율 15%, 매출 15.6조 원을 목표하며 신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현대차의 인도 집중 투자, 미국 의존 탈피의 마지막 도박
현대차의 인도 집중 투자, 미국 의존 탈피의 마지막 도박

현대자동차가 세계 3위 자동차 시장 인도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북미 시장의 높은 관세 부담과 경쟁 심화라는 위기를 신흥 시장 다변화로 극복하려는 전략이다. 2030년까지 45조 루피(약 6조8천억 원)를 인도에 투자하겠다는 공언은 현대차의 절박함과 결연함을 모두 드러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회장 겸 대표는 "인도는 현대차의 글로벌 성장 비전에서 전략적 우선순위에 있으며, 2030년까지 인도는 현대차에 두 번째로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명언했다. 현재 인도는 미국과 유럽에 이어 현대차의 세 번째 판매 거점이다. 그러나 인도 시장의 잠재력은 무한하고, 현대차의 성장성은 무한대다.

북미 '캐시카우'에서 벗어나려는 혁명적 시도

현대차가 처한 상황은 절실하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부과한 25% 관세는 현대차의 수익성을 직격했다. 올해 초 제시했던 영업이익률 목표 78%를 67%로 하향 조정한 것도 관세의 후유증이다. 북미 판매 비중을 2025년 29%에서 2030년 26%로 낮추려는 계획도 이 같은 맥락이다.

무뇨스 회장은 "미국은 여전히 현대차의 가장 수익성 높은 시장이지만, 더 이상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미 시장에서의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신규 시장 개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런 전략적 위기 속에서 주목받는 것이 인도다.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 연평균 5.2% 성장률의 성장형 시장,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전기차 지원 정책까지 갖춘 대륙이다. 현대차는 이곳을 '중국의 대체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29년 만의 혁명, 첫 인도인 CEO 선임

현대차가 내놓은 가장 상징적 제스처는 첫 인도인 최고경영자 선임이다. 타룬 가르그 현대차 인도 최고운영책임자(COO)가 2026년 1월부터 CEO로 승격한다. 현대차가 1998년 인도 진출한 이후 29년 만에 나온 결정이다.

이는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니다. 한국 본사 중심의 경영 구조에서 현지 경영진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가르그 회장은 인도 시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현지 경영 전문가다. 그의 리더십 아래 현대차는 인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 전략을 더욱 신속하게 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차는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도 첫 현지인 CEO를 선임했다. 지역별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현지 인재로 채우는 이 같은 글로벌 '현지화 혁명'은 전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드문 일이다. 현대차가 얼마나 진지하게 이들 시장을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26종의 신차 무기로 15% 점유율 목표

현대차의 인도 공략의 핵심은 현지 맞춤형 신제품 공세다. 2030년까지 총 26종의 신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 중 8종은 하이브리드 SUV, 5종은 전기차다. 특히 2027년 인도 현지 생산 전기차 SUV는 현대차의 전동화 전략의 최전선이 될 것이다.

현대차는 현재 인도 시장 점유율 14.22%를 2030년까지 15%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겨우 1%의 상승처럼 보이지만, 인도 시장의 연평균 5.2% 성장 속도와 신차 26종 투입을 고려하면 상당히 보수적인 목표다. 현대차가 얼마나 신중하게 인도 시장을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욱 주목할 점은 2030년 인도 매출 목표 110억 달러(약 15조6천억 원)다. 이는 올해 인도 매출 약 2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와 함께 현대차는 인도 시장에서 창출한 수익의 30%를 다른 신흥 시장으로 수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인도를 단순한 판매 기지가 아닌 '아시아·중동·아프리카 수출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뜻이다.

프리미엄화 전략과 하이브리드 초점 전환

현대차의 인도 전략이 흥미로운 이유는 2030년까지 가격을 높이면서도 판매량을 늘리려는 '프리미엄화' 시도다. 무뇨스 회장은 "수출 차량의 평균 판매가가 국내 판매차보다 6% 높으며, 이는 수익성 향상에 매우 유리하다"고 언급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럭셔리 브랜드를 인도에 도입해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또한 전기차 위주의 전동화 로드맵에서 한 발 물러나 하이브리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투트랙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는 현실적이면서 수익성 있는 판단이다. 인도는 충전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고, 전기차 비율이 신차 판매의 5%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뇨스 회장은 "우리는 고객에게 무엇을 타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하이브리드를 원하면 하이브리드를, 전기차를 원하면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고객 중심의 현지화 철학이 담긴 발언이다.

경쟁심화 속 '국민차 이미지' 재정의

인도 시장은 현대차의 마지막 희망이자 동시에 혹독한 현실이다. 시장 점유율이 2019년 17.3%에서 2025년 14.22%로 떨어졌다. 마루티 스즈키가 여전히 1위를 놓치지 않고 있고, 타타 모터스와 마힌드라 앤 마힌드라의 추격이 치열하다.

현대차는 전략적 출발점을 '국민차' 이미지 강화로 설정했다. 2024년 인도 주식시장 상장(IPO)을 통해 현지 기업 이미지를 부각하고, 현지인 CEO를 내정함으로써 '우리의 현대차'라는 소속감을 심어주려는 전략이다. 인도 대림대학교 김필수 교수는 "현대차가 인도 상장과 현지 기업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중국 시장의 대안으로서 현지화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가 '일본식 현지화'에서 벗어나 초기부터 글로벌 신차를 기반으로 인도 특화형으로 개발해 온 방식도 경쟁력이다. 센토(현지형 프리미엄 SUV)처럼 인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차들이 시장에서 인정받아 왔다.

기술 혁신과 미래차 생태계 구축

인도 투자의 또 다른 축은 R&D 기반 마련이다. 현대차는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AI와 자율주행 연구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생산 거점을 넘어 미래차 기술 개발의 본거지가 되겠다는 의지다.

배터리 국산화도 추진 중이다. 현대차는 인도 첸나이에 배터리팩 조립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2025년 완공 목표로 연 75,000개 배터리팩 생산 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2030년까지 매출 110억 달러 달성, 점유율 15% 이상 확보, 신차 26종 투입, 배터리 국산화라는 4대 목표는 현대차가 인도를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도가 현대차 글로벌 전략의 '마지막 보루'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성장 축'이 될지는 앞으로의 집행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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