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 더 이상 선택의 기본값 아니다"…'수입차 갈증' 푸는 한국 시장의 격변
국내 소비자 10명 중 3명이 신차 구매 시 수입차 브랜드만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AIDA 조사 결과, 수입차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고 시장 지형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 자동차 시장이 30년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맞이했다. 1995년 신차 구매의 0.6%에 불과했던 수입차 선택은 어느덧 1000명 중 300명 이상이 "수입차만 본다"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실시한 조사 결과는 국산차 중심의 시장 지형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조사는 지난 18일 발표됐으며, 전국 17개 시·도 거주 만 20~59세 운전면허 보유자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향후 2년 내 신차 구매를 계획하는 소비자 중 31.5%가 수입차 브랜드만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이 나왔다. 이는 2015년 조사의 정확히 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국산차의 위상이 얼마나 빠르게 하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더 놀라운 것은 소비자들의 심리 변화다. 2년 이내 구매 예정자를 세분하면, 국산차만 고려하는 비율은 2015년 64%에서 현재 36%로 반 토막이 났다. 이제 수입차는 '럭셔리 상품'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지'로 인식되는 중이다.
긍정 인식 66%…'수입차 대중화'가 바꾼 시장 심리
수입차 인식의 변화가 얼마나 근본적인지 보려면 감정 지표를 봐야 한다. 응답자의 66.3%가 "과거에 비해 수입차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답했다. 반면 부정적으로 변했다는 응답은 4.9%에 불과했다.
이러한 심리 변화의 가장 큰 추동력은 뜻밖도 '대중화'였다. 인식 변화 요인을 묻는 질문에 37.1%가 '수입차의 대중화'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지난 30년간 수입차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에서 이제는 도로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존재로 변모했다.
그다음 요인들은 '국산차와의 가격 차이 축소'(17.7%), '가격 대비 품질·성능 개선'(12.9%) 등이었다. 핵심은 경제적 접근성이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수입 콤팩트카를 사려면 1억 원대 초반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보조금을 감안하면 국산 준중형차와 비슷한 수준의 투자로 가능해졌다.
구매 이유: 품질, 성능, 그리고 '무언의 자신감'
국산차에서 수입차로 전환한 소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오는 이유는 품질과 내구성, 성능과 기술력이다. 이는 단순히 차량의 물리적 우수성을 넘어선다. 한 번 수입차를 경험한 소비자일수록 그 장점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구매 동기 리스트에는 희소성과 차별성, 고급스러운 디자인, 브랜드 이미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심리학적 변화는 "국산차는 대중적이고, 수입차는 나만의 선택"이라는 개인화된 가치관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응답자의 48.8%는 수입차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28.1%는 "수입차의 품질·기술 전반적 향상"을, 9.7%는 "소비자 선택의 자유 확대"를 수입차의 주요 기여로 지목했다.
10년 후 수입차 점유율 26%…산업 지형도의 재편
현재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점유율은 약 18~20%대이다. 지난해 2024년 기준 정확히는 18.3%였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10년 후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놀랍게도 응답자들은 2035년의 수입차 점유율이 26.3%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현재보다 40% 이상 높은 수치다. 이러한 낙관론의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 수입차 가격 경쟁력 강화(31.0%)였다.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국산·수입차 간 기술 격차를 축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소비 성향 확산(18.4%)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동차를 보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셋째, 수입차 기술·성능의 지속적 발전(13.4%)이다.
테슬라의 충격, 그리고 전기차 혁명
현재 한국 시장에서 수입차 브랜드별 판매량을 보면, 테슬라(약 5만5595~5만8000대), BMW(약 7만541대), 메르세데스-벤츠(약 6만260대)가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테슬라의 급성장이다.
올해 1~11월 누적 기준, 테슬라는 약 5만 대 이상을 팔아치웠으며, 11월 한 달에만 7632대를 등록했다. 이는 벤츠와 BMW를 뛰어넘는 규모다. 테슬라 모델Y는 9월 한국 SUV 시장에서 9000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국산차·수입차 모두를 제쳤다.
전기차 시장에서 수입차 브랜드의 판매량이 국산차를 크게 앞질렀다는 사실은 단순한 판매 수치가 아니다. 이는 차세대 자동차 기술에서 국산차가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는 경고다.
역사적 반전: '국산차의 시대' 영원하지 않았다
1995년 현대·기아차가 시장을 장악하던 시대, 수입차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그해 신규 등록된 수입차는 겨우 6921대였다. 반면 지난해 등록된 수입차는 26만3288대로, 38배 이상 증가했다.
정윤영 KAIDA 부회장은 "지난 30년간 수입자동차가 국내 시장에 기술 혁신과 다양성 확대를 견인했다는 평가를 소비자들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이 한 문장에는 한국 자동차 시장의 구조 전환이 응축되어 있다.
과거 국산차는 '기본'이었다. 신차 구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현대나 기아를 떠올렸다. 국산차가 싼 덕에, 내구성 좋은 덕에, 서비스가 편한 덕에. 하지만 지금 그 기본이 깨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비슷해졌는데 왜 국산차만 봐야 하나?"라고 묻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시장은 누가 주도할 것인가
현재 한국 자동차 시장의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단순한 수입차 증가가 아니라 수입차 생태계의 급속한 다양화다. 1995년 15개 수준이던 수입 브랜드가 이제는 30개까지 늘었으며, 판매 차종은 100여 개에서 500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BYD, 폴스타, 라이 같은 신흥 브랜드들까지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더 이상 BMW와 벤츠만의 수입차 시장이 아니다. 소비자의 선택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산차 업계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현재의 추세가 지속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면서도 국내 시장 점유율에서는 50%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수출로 세계를 지배하되 국내는 국제 시장이 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시장은 정직하다
KAIDA의 이번 조사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소비자들이 수입차로 눈을 돌린 것은 감정적 이유가 아니라 합리적 판단이다. 품질, 성능, 가격,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의 자유'를 더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10년 후 한국 자동차 시장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점에 누가 주도권을 잡고 있을지는 이미 현재의 소비자 행동에 답이 나와 있다. 수입차 31.5%의 의지, 그리고 "더 나은 선택을 원한다"는 66.3%의 긍정적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