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도로를 점령한 '수입차 제국'…BMW·벤츠·테슬라 3강 구도가 자동차 시장 미래를 결정한다
국내 수입차 시장이 연간 30만대 돌파를 눈앞에 둔 가운데, BMW·벤츠·테슬라 3강 체제가 굳어졌다. 4위는 렉서스와 볼보가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BYD 등 신규 브랜드가 시장 판도를 흔들었다. 수입차 판매 급증의 원인을 분석했다.
한국 자동차 시장이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통계 작성 38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수입차 판매가 연간 3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며, 시장 점유율도 20%라는 심리적 기준을 돌파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상위권 판도가 'BMW-메르세데스-벤츠-테슬라'라는 뚜렷한 3강 구도로 굳어지면서, 국내 자동차 소비 문화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23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에 신규 등록된 수입차는 27만8769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3% 증가한 수치다. 11월 한 달간에만 2만9357대가 등록되며 전년 동월 대비 23.4% 늘어난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업계는 12월 신년 할인 행사와 재고 일소 움직임을 감안하면 연간 30만대 돌파가 확실시된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수적 성장은 단순한 숫자 게임이 아니다. 수입차가 한국에서 본격 판매되기 시작한 1995년 연간 6921대와 비교하면 약 43배 증가한 것이다. 1987년 처음 수입차가 들어온 이래 점유율이 0.004%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하면, 현재 20% 대의 점유율은 극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압도적 승리를 거두는 '프리미엄 3인방'
최상위권 판도는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BMW는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7만541대를 판매하며 압도적 선두를 유지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6만260대로 그 뒤를 이었으며, 테슬라는 5만5594대를 기록했다. 이 세 브랜드가 전체 수입차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월별 순위 변동이다. 11월에는 테슬라가 7632대를 판매하며 처음으로 월간 판매 1위에 올랐다. BMW는 6526대, 메르세데스-벤츠는 6139대를 기록했다. 테슬라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연속 1위를 달리다가 10월 BMW에 밀렸지만, 한 달 만에 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이는 전기차 가격 인하와 적극적인 마케팅의 결과로 분석된다.
테슬라의 약진은 드라마틱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2만8498대에 불과했던 판매량이 올해는 5만5594대로 약 94% 증가했다. 가격 인하가 핵심이었다. 모델Y의 신형 모델은 전기차 보조금을 적용하면 4000만원 후반대에도 구매 가능해지면서, 과거 1억원대의 고가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고급 세단이 이제 평범한 가족의 선택지가 된 것이다.
연말의 진짜 관전 포인트, 4위 자리를 두고 벌이는 '렉서스 vs 볼보' 초접전
3강 체제가 굳어진 반면, 4위를 놓고는 렉서스와 볼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10월까지 누적 판매 기준 볼보가 렉서스보다 앞선 것으로 알려졌으나, 격차는 불과 500여대 정도다. 이들의 경쟁은 단순한 순위 싸움을 넘어 앞으로의 수입차 시장 트렌드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렉서스의 강점은 하이브리드 기술이다. 전기 에너지만으로 주행이 가능하면서도 필요시 엔진을 활용할 수 있는 풀하이브리드(FHEV) 방식은, 전기차 수요가 정체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완벽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렉서스는 타 브랜드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기술을 구축해온 만큼, 최근의 전기차 '캐즘'(시장 성장 정체) 상황에서 가장 큰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반면 볼보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중심의 라인업과 전동화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에는 전기 SUV 'EX90'과 전기 세단 'ES90' 같은 신차를 출시해 전동화 라인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소비자들이 어떤 가치에 더 공감하느냐가 최종 승부를 가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시장 판도를 흔드는 신규 변수, 중국 브랜드 BYD의 돌풍
또 다른 주목할 변수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비야디)의 약진이다. 올해 4월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3791대를 판매하며 국내 완성차 브랜드인 쉐보레를 넘어섰다. 11월 판매량은 1164대를 기록하며 판매 5위에 올랐다.
가성비는 BYD의 가장 큰 무기다. 소형 전기 SUV 아토3는 동급 차량보다 약 1000만원 저렴하면서도 합리적인 성능을 갖췄다. 초기에는 '중국 차'에 대한 선입견이 진입 장벽이 될 것으로 우려됐지만, BYD는 가격 경쟁력으로 빠르게 소비자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이는 국내 완성차 업체에게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
왜 갑자기 수입차가 불티나게 팔리나
국내 수입차 판매가 급증한 데는 여러 구조적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국산차의 가격 상승이다. 국내 완성차 브랜드의 가격이 꾸준히 올라가면서 과거 수입차와의 가격 격차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일부 경우에는 수입차가 더 저렴한 사례도 등장했다. 과거 "수입차는 고가"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 취급 모델의 폭발적 증가다. 1995년 당시 몇 개 브랜드에 불과하던 수입차는 이제 30개 브랜드, 500개 이상의 모델을 자랑한다. 소비자의 선택지가 대폭 확대되면서 다양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와 BYD 같은 신규 브랜드의 진출로 전기차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닌 실용적 선택지가 됐다. 2024년 11월까지 테슬라의 국내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92.8% 증가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결국 시장이 결정한다
정윤영 KAIDA 부회장은 "11월 수입 승용차 신규등록은 10월 추석연휴로 등록대수가 일시적으로 감소했던 기저효과와 더불어 각 브랜드의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에 힘입어 전월 대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30년 만에 맞이한 이 거대한 전환은 단순히 통계상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소비자의 자동차 선택 기준이 국산 vs 수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가격, 성능, 전동화 기술, 브랜드 신뢰도 등 다차원적 요소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수입차 3강 체제의 공고화와 4위를 놓고 벌이는 렉서스와 볼보의 대결, 그리고 BYD 같은 신규 세력의 등장은 모두 이러한 시장의 민주화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올해 12월이 끝나면 한국 도로는 5대 중 1대가 수입차인 세상이 된다. 이는 한국 자동차 시장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다. 연말이라는 마지막 달, 4위를 놓고 벌이는 렉서스와 볼보의 경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가 2025년 수입차 시장의 최종 게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