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서 무너진 K-전기차"…34% 장악한 중국산 전기차, 생산기지 존립 흔들다
한국 전기차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2025년 국내 신규 등록된 전기차 22만 177대 중 중국산이 7만 4728대로 전체의 34%를 차지하며, 불과 4년 전 1%에 불과했던 점유율이 무려 30%대를 넘어섰다. 이는 국산 전기차 점유율이 57.2%로 급감한 것과 대조되는데, 2022년 75%였던 국산 전기차 점유율이 3년 만에 18%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의 집계를 보면 우리는 이제 안방에서 중국산에 밀리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았다고 봐야 한다.
테슬라·BYD 앞세운 중국산의 공습
중국산 전기차의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판매 증가율을 보면 2024년 72%, 2025년 112.4%로 기하급수적 상승을 기록했다. 이 공세의 선봉에는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되는 테슬라 모델3와 모델Y가 있다. 테슬라는 2025년 한 해에만 약 5만 9893대를 판매하며 제조사별 2위를 차지했고, 최근 3년간 누적 판매량은 거의 10만 대에 육박한다. 테슬라 코리아가 2025년 12월 말 모델3·모델Y 가격을 최대 940만 원 인하하며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친 것도 판매 급증에 한몫했다.
중국 토종 브랜드의 약진도 눈에 띈다. BYD는 '아토3'와 '씰리언7'을 앞세워 2025년 상반기에만 1337대를 판매하며 수입 전기차 판매 1위를 2개월 연속 기록했다. 초기 진입 단계임에도 보조금 적용 시 2000만 원대 후반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가성비를 강조하며 시장 안착에 성공한 것이다. 여기에 폴스타, BMW, 볼보 등도 중국 생산 전기차를 국내에 지속 공급하고 있어 중국산 전기차의 브랜드 다양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수출 87% 급감, 내수마저 잃다
국산 전기차가 직면한 위기는 내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산 전기차의 최대 수출 시장이었던 미국향 수출은 2025년 1만 2166대로 전년(9만 2049대) 대비 86.8% 급감했다. 2022년 이후 연간 기준으로 가장 적은 수치다. 특히 2025년 11월에는 단 13대만 수출되며 월별 기준 역대 최저를 찍었다.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장벽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수 점유율마저 중국산에 내준 것은 국내 전기차 생산 기반에 직접적인 타격을 의미한다. 현대차는 약 2조 원을 투입해 울산에 연간 2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신공장을 건설했고, 2026년 1분기 중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29년 만에 국내에 짓는 새 완성차 공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내수 시장 위축과 수출 부진이 겹치면 가동률 저하는 불가피하다. 기아가 화성에 조성한 EVO 플랜트 역시 연간 25만 대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췄지만,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
공급망 전체로 번지는 충격파
전기차 생산 기반의 위기는 곧 배터리 및 부품 협력사로 충격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현대차·기아는 최근 책임광물을 기존 5개에서 22개로 확대하며 리튬, 니켈, 흑연 등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 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완성차 생산량이 줄어들면 협력사 주문은 자연스럽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울산과 화성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지면 1차 협력사는 물론 2·3차 협력사까지 도미노처럼 타격을 받게 된다.
KAMA는 중국산 전기차 확산이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가격 인하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으나, 국내 제조 기반과 공급망 경쟁 압력 측면에서 위협적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2026년 전기차 보조금을 1조 5953억 원 규모로 전년 대비 약 900억 원 늘렸고, 5300만 원 미만 전기차에 580만 원, 8500만 원 미만 전기차에 28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보조금만으로는 중국산의 가성비 공세를 막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현대·기아, 반전의 카드는?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시장의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속에서도 전동화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울산 전기차 신공장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혼류 생산 시스템을 갖춰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다. 첫 양산 차종으로 예정된 제네시스 플래그십 전기 SUV 'GV90'이 차세대 플랫폼 'eM'을 적용해 얼마나 경쟁력을 발휘할지가 관건이다.
기아 역시 EVO 플랜트에서 PV5 등 목적기반차량(PBV) 생산에 집중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2027년 가동 예정인 웨스트 플랜트까지 더하면 연간 25만 대 규모의 PBV 생산 거점이 완성된다. 하지만 이 모든 투자가 결실을 맺으려면 중국산 대비 확실한 기술적 우위와 브랜드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안방 시장을 되찾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력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가 5년간 125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지금 필요한 건 투자 규모가 아니라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확한 가치 제안이다.